‘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라고 말해지는 이우환(70)씨는 정작 스스로 화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분히 자기멸시적인 ‘환쟁이’ 라고 말한다. 미술작업 자체가 타장르에 비해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의지를 구체적인 언어인 말로 설명하는 문학 등의 장르에 비해 미술 언어는 제 논리를 스스로 설명해내기에는 뭔가 모자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인지 이씨는 작가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림은 삼류라고 단정한다.

그는 글도 잘 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신춘문예에 시, 소설이 모두 입선한 경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일찍이 문학에 뜻을 둔 바 있다. 그의 에세이가 일본 교과서에 실렸을 정도다.

그의 작업을 보면 다분히 철학적이다. 그리지 않고 그리는 법을 말하려 하는 그의 작업은 마치 말하지 않고 말하려는 ‘반문자정신’과 상통한다. 이른바 불립문자, 서양철학으로 보면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다. 그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려는 듯이 보인다. 과연 단순 담백의 극치랄 수 있는 그의 작품을 보면 그린 것보다 그리지 않은 것으로 말하려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것이 묘하게 동아시아 회화전통의 여백미란 것과 맞물려 독특한 미학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은 1년의 반은 프랑스에 머물고, 반은 일본에서 작업하며 코스모폴리턴으로 살고 있는 그를 지난달 15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화랑의 카페에서 만났다. 친척을 방문하러 2박3일간 잠시 한국에 다니러온 길이었다. 1956년, 서울대 미대를 다니던 스무살 청년이 일본에 있는 외삼촌에게 보약 전해주러 밀항했다가 눌러앉아, 일본 화단에서 ‘모노파(物派·일본에서 1960~70년대에 선풍을 일으킨 미술운동. 물체의 단순함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의 창시자로 불리며 세계적인 화가로 자리잡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잘 지내시는지요. 지금은 어디서 머물고 계십니까.

“일본 도쿄 인근의 가마쿠라란 데서 살고 있습니다. 가마쿠라는 제2차세계대전 때 가난한 지식인, 예술인들이 많이 피란 간 곳이라서 애착이 가는 동네입니다.”

―학교는 계속 나가십니까.

“도쿄 다마미술대 대학원 박사과정만 맡고 있습니다. 내년에 정년 퇴임합니다.”

―나이 스물에 일본으로 밀항, 지금은 유럽과 일본에서 반반씩 살고 있는 선생님의 이력을 보면 국가나 민족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예술가에게 국가란 어떤 것입니까.

“이제 국가나 민족이란 개념이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70년대 내가 처음 유럽에서 작업했을 때, 내 작품을 보고 아시아적이니, 동양적이니 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놓고 30년을 싸웠는데 지금은 나를 두고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한국적이니, 일본적이니 하는 국가적 개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이우환 특유의 무엇이 있는냐가 중요합니다. 나와 비슷한 그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일본에 밀항해서 미술대를 다니지 않고 니혼대 철학과를 다녔습니다. 대학에서 철학공부한 것이 미술작업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만.

“철학과 미술작업의 상관관계는 말할 필요도 없이 밀접합니다.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일인데, 작업을 하다보면 생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자신이 한 작업은 하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작업 자체가 다양한 언표행위이기는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말로도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완당이나 표암 등도 모두 훌륭한 화가이자 훌륭한 이론가였습니다. 작품을 말로 설명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서 받아들여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사기도 못되는 그냥 엉터리입니다. 사기라도 치려면 고급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 예술입니다. 우리 화단이 그동안 일본에서 잘못 배워와서 화가라면 책은 절대로 읽지 말고 무조건 그리기만 하면 된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엉터리를 양산하는 길입니다.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작가는 개똥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승업은 개똥같은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야말로 고도한 지식과 생각 등을 많이 공부하고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무슨 책을 보십니까.

“칸트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또 이슬람 문화에 대한 고전도 보고 있습니다.”

―칸트의 어떤 점에 매료되셨는지요.

“파고 또 파고, 모르는 부분을 점점 좁혀서 끝까지 몰고가는 태도가 마음에 듭니다. 물론 모르는 부분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끝까지 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도가 터지게 하려고 도를 닦아서는 안됩니다. 도가 안터지게 하기 위해 도를 닦는 겁니다. 모르는 부분을 알기 위해 추구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없어질 거라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예술도 아무리 생각해도 잘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걸 어디까지 파고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 흥미롭지요.”

―선생님도 잘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어떤 부분이 잘 안되는지요.

“종이나 캔버스를 터치하다보면 자기 생각대로 됩니다. 그러나 내 생각을 넘어서는 부분이 나오는 순간이 있을텐데, 그게 어렵지요. 내가 나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내 생각을 넘어서는 것을 어떻게 내가 표현합니까.

“캔버스나 종이는 물질이지요. ‘남’입니다. 그중 극히 일부만 접촉하는 것이 터치입니다. 내가 아닌 부분을 내가 불러들이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그 ‘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릅니다.”

―근대가 ‘나’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되는 거라면, ‘남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 선생님의 작업은 근대에 대한 반성 혹은 비판으로 파악됩니다.

“자기 생각대로 표현하는 것이 근대입니다. 자기 생각은 옳고 또 그 생각대로 세상이 움직여갈 것이란 자기 확신이 근대적 태도지요. 이것이 식민주의고 제국주의입니다. 나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이자는 겁니다. 캔버스가 있고 붓이 있습니다. 이런 ‘남’의 요소를 살리면서 나를 표현하는 겁니다. 따라서 나의 터치는 가능하면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들여다 놓고 그 둘의 호응관계를 보는 겁니다. 이것이 단순화작업 모노 작업입니다.”

―단순화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물론 미국의 미니멀 아트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니멀 아트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미니멀 아트는 ‘바로 그것, 그것 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말합니다. 나는 ‘바로 그것 아닌 것, 그밖의 것’ 아닌데도 그 누군가가 스며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 아닌 것’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면 표현이 보편성을 띠어야 합니다. 인간의 호흡까지 감안해야 합니다. 일례로 대가들의 작품을 보면 숨을 들이쉬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숨을 내 쉬거나 숨을 멈추고 그립니다. 그런 편안한 상태를 표현하려면 숨을 멈추고 죽 그리면, 조용히 천천히 숨을 내 쉬는 게 그림에 표현됩니다. 내 그림을 보면 숨을 멈추고 천천히 진행되는 조용한 리듬이 전해집니다.”

―‘조용히 내쉬는 숨을 그림에 표현한다’는 말 자체가 문학적입니다.

“겸재는 대단한 호흡입니다. 호흡을 기막히게 조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고급은 겸재라고 봅니다. 화면에서 숨결이랄까, 숨결의 바이브레이션이 기가 막히게 조절되고 있습니다. 겸재의 작품 중에서 비온 뒤 서울 남산을 표현한 그림을 보면 조용히 숨이 내 쉬면서 옆으로 구름결 같은 호흡이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이런 호흡과 리듬 등 이 모두 보편성을 얻기 위한 내 연구 대상이고 내 맘에 걸리는 일입니다.”

―작업은 매일 하십니까.

“매일 하지 않으면 손이 굳어서 다음 날 작업이 안됩니다. 또 몸 풀 듯이 생각도 뭔가 매일 해야 스스로 풀립니다.”

―살아오면서 언제 가장 심한 좌절감을 느낀 때는 언제입니까.

“나는 이승만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왔습니다. 이후 군사정권시절에는 일본에서 군정반대와 통일운동이 자연스럽게 연결됐습니다. 대단히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사회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일본에서 군정반대운동이 흐지부지돼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심한 좌절을 맛봤지요. 내 내부에서도 문제가 생겼는데, 그렇게 가난한 나라가 어쨌든 군정을 거치며 발전된 나라가 됐다. 이것은 인정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뭘해야되나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좌절한 시절이 있었지요. 이때가 대학졸업하고 방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 주류 사회의 ‘남’으로 살아온 이력이 ‘남’과의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일 것으로 봐집니다만.

“남과의 관계, 외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가 실질적인 개혁운동일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도 남 안에 들어가서 소외되었던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후 유럽에 갔을 때도 그랬고, 다시 한국에 오니 일본에서 왔다고 또 소외되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서로 남다른 것들이 어떻게 만나는가, 서로 다른 것들이 어떻게 악수하고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한 관심사항이 됐습니다.”

―그런 인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회화작업으로 옮겨갔습니까.

“근대주의란 것이 자기 의지대로 캔버스를 사용하는 거라면, 나는 가능하면 나를 줄이고 나를 억제해서 남을 받아들이는 법을 사용했습니다.”

―근대비판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근대비판이라면 몇가지 이슈가 있는데, 보다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가지는 방법을 획득하는 것이 근대를 넘어서는 첫번째 길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지금 한국사회에는 우파밖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부도 어떻게 보면 극우정부입니다. ‘남’을 인정하지 않고 ‘남’을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고 남과 악수하고 스스로를 억제하는 법을 모르는 태도는 우파적 태도, 보수적 태도, 친근대적 태도라고 봐야지요. 자기들만 옳고 남은 다 그르다고 한다면 그건 시대착오적인 근대적 인식입니다. 남들과의 연결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오픈하는 것이 좌파입니다. 나는 한국에도 진정한 좌파가 생겨야 된다고 봅니다. 좌파는 영원히 비판하는 자들입니다. 헤게모니를 잡는 순간 좌파는 좌파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는 극우세력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두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뛰어가고 있으니까요.”

―스스로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나는 어른은 아니예요. 도저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망나니까지는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삐딱하기 살 것 같아요. 나는 내 인생을 놓고 봐도 떠돌이예요. 한국에서 20년 살고, 다시 일본에서 20년을 살다 지금은 한 해에 반은 유럽에 가 있지, 진짜로 떠돌이로 살고 있어요. 그러니 공동체에서는 정주민들이 불편한 거예요. 나는 그들을 불편하게 하려고 살고 있고.”

―가족 얘기 좀 해주세요.

“1967년에 결혼해서 딸 셋을 낳았지요. 와이프는 오랫동안 요리연구가 겸 기고가로 활동했는데 요즘은 내 일 때문에 바빠서 다른 일은 일절 못하지요. 그래서 늘 미안합니다.”

―계획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23일까지 프랑스 상테티엔 근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작업방식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 지 모르지만 점점 더 단순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점점 더 치저하고 엄격하게 극단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근대주의자들은 표현하는 데 막다른 골목까지 가 있습니다. 그러면 포기하든지 완전히 다른 것을 하든지 해야하는데, 아주 단순하지만 많은 암시를 할 수 있는, 그 암시 속에 종래에 없던 힌트를 줄 수 있는 것, 극단적으로 단순한 것 그 속에서 단순함을 넘어선 새로운 환상을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미술이란 만남의 표현이고 남과의 관계 작품 속의 타자성이 나타나야 하는데 자기 생각을 줄이되 얼마나 남을 끌어들일 수 있는가. 남과 악수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싸우려면 이쪽이 열려야 됩니다. 자기를 철저하게 절제하다보니 자연히 작품 속에 요소가 줄어드는 거예요. 터치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 터치하지 않은 부분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는 것. 터치하지 않고 울림이 있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화부장 msba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