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 광복 60주년, 을사늑약 100주년. 양국이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한·일 우정의 해’로 지정하고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올해가 100년 근·현대사의 질곡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고 당초 기대에 못미친 모습으로 저물어가고 있다.

을사늑약 100주년 다음날인 18일 부산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의 모습은 연초의 열기가 식어버린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 주최측으로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를 마지못해 만난 인상만 줄 뿐, 양국간 현안들은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것이 없다.

양국은 1월 서울과 도쿄(東京)에서 잇달아 ‘한·일 우정의 해’ 개막행사를 갖고 교류의 질적, 양적 확대를 다짐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한달도 못가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측 호칭)의 날’ 조례 제정을 추진하면서 급속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주한 일본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문제의 조례가 시마네현 의회를 통과하면서 양국관계는 감정적 대립양상으로 치달았다. 양국간 정치·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거의 올해 내내 이어졌으며, 지난 10월16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절정에 이르렀다.

한·일간 갈등은 기본적으로 급속히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이 원인 제공을 한 측면이 크지만, 한국정부도 일관성 없는 대응으로 문제를 더 꼬이게 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 3월 ‘독도 갈등’ 때는 정부가 오히려 앞장서 국민감정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10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에는 슬그머니 강경자세를 거둬들이고 정상회담에 응하는 등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한편에서 한·일간 민간교류는 꾸준히 증가, 나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일본내 ‘한류’ 열풍은 올해 드라마 ‘대장금’ 등으로 이어지면서 꾸준히 세를 확산해가고 있으며, 한국도 일본문화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다. 결국 민간·문화 교류는 자연스럽게 확대되고 있으나, 정부간·정치적 관계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 을사늑약 100주년에 즈음해 돌아본 한·일관계의 현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