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다른 점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한의학에선 모든 육체적 기능 하나 하나의 뒤에 정신적인 작용이 결부된 것으로 본다.

서양의학이 물질적 관점으로 인간의 몸을 파악하면서 더 작게 세분화해 분석하는 경향과는 다르다. 한의학은 인간의 정신작용이 활동하는 매듭인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치료범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 오장육부와 대응해 인체에 펼쳐진 맥점이 경락(經絡)과 경혈(經穴)이다.

이 경락의 작용은 인체의 기능뿐 아니라 정신작용에도 관계하며, 또 경혈에 침을 놓아 정신적인 영역의 질환도 치료하게 된다. 여기에는 정신과 육체를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한의학적 인간관이 녹아 있다.

서양의학이 물질적 분석 관점에서 인체를 끊임없이 쪼개어가며 유전자의 문제로까지 치달아 탐구를 계속하고 있는 반면, 한의학은 장부와 경락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함께 기능하는 인간’을 원리로 해서 다시 세밀히 분석하고 이를 다양하게 적용시키는 치료법을 찾아간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나침반의 북쪽을 향해 항해하는 팀과 남쪽을 보면서 항해하는 팀이 노를 젓는 기술이 발달하고 고성능 엔진을 장착하여 발전을 거듭하는 면에서는 같지만 관점이 다르기에 그 진행방향과 도착점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과 유사하다.

사상의학(四象醫學)은 이러한 한의학적 인간관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시야를 확장시킨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의학은 아시다시피 한국 한의학의 독창적인 학문이다.

우리 한(韓)의학이 중국의 한(漢)의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정신과 육체를 통합적인 관점으로 파악하는 한의학적 인간관을 더욱 확고히 하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사상의학을 세웠다는 점에서 분명 한국 한의학은 독창적이다. 중국 고전의 한의학에는 사상의학처럼 체계적인 학문은 없으며, 현재의 중의학의 관심도 이와는 다르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의학(漢醫學)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으며 중의학(中醫學)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 중국은 유물론을 받아들이는 공산화 과정 속에서 사상뿐 아니라 학문에도 유물론적 관점들이 스며들었으며 한의학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정신이 강조된 고유의 한의학적 인간관도 일정 정도 희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현재의 중의학 의료체계를 갖추면서 한(漢)의학과 서양의학을 결합하는 작업을 하는데, 전래의 한의학의 독창적 관점(인간관 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서양의학의 분과체계와 결합시키면서 실용화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중국의 한의사인 중의사(中醫師)는 그러한 중의학을 연구한 의사이다.

중의학의 변천과정과 현실을 감안한다면, 전래의 한의학적 인간관에 바탕을 둔 정통성을 중의학이 계승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문이 발생된 기원 지역에 정통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흔적만 겨우 남아있다는 것이다.

학문도 흘러가는 것이며, 학문의 정통성을 가진 곳이 지금의 ‘정통’이 되는 것이다. 사상의학은 한의학적 인간관을 더욱 체계화시킨 학문이며 한국 한의학은 이미 중국 한의학을 넘어서는 독창성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더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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