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으로 숭명배청의 척화론을 고집하게 된 서인정권이 자초한 전쟁.’

1636년(인조 14년) 12월 일어난 병자호란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역사인식에는 조선이 ‘자초한 전쟁’이라는 통념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인조반정과 인조대 집권층에 대한 일방적인 부정, 광해군대 외교정책에 대한 과도한 평가, 명을 섬기던 조선의 사대외교에 대한 부정에 기반을 둔 이런 통념은 국사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최근 출간된 대중용 역사책 등을 통해 일반 시민들의 역사인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00년과 2003년 각각 출간된 이이화씨의 ‘한국사이야기 12’(한길사)와 이덕일씨의 ‘살아있는 한국사 3’(휴머니스트)은 이런 통념을 전파하는 데 일조한 대표적인 역사책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통념은 과연 역사적 사실과 부합할까.

조선후기 정치사를 전공한 오수창 한림대 교수는 최근 출간된 반연간 학술교양지인 ‘한국사시민강좌’(일조각) 제36집에 기고한 ‘청(淸)과의 외교실상과 병자호란’이란 글에서 “인조반정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군사정권의 극복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과제였던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 지식인들의 현실비판 의식과 연결돼 나온 것”이라며 “한국 현대사에 대한 비판의식을 인조반정이나 그 이후의 서인정권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전쟁의 본질은 청이 기존맹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조선을 향해 자기 나라의 신하가 되라고 강요하던 끝에, 일관되게 형제관계를 유지하려 한 조선을 침략한 데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오 교수는 이이화씨가 청나라 군대의 조선출병을 묘사한 ‘(1636년) 12월 2일 청군은 마침내 선양을 출발했다. 차가운 겨울 햇살 아래 색색가지 깃발이 펄럭이고 군사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는 구절을 예로 들며, “(병자호란 서술은) 전체적으로 청의 조선침략을 당연하게 여기는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때로는 침략을 감행한 청을 미화하는 듯한 서술까지 나타난다”며 “이웃나라를 침략해 그곳의 민중을 짓밟게 되는 군대의 출병을 이렇게 묘사한 것을 두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덕일씨는 병자호란을 ‘쿠데타 정권의 허황한 외교정책 때문에 빚어진 고통’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최근 연구에서 실제 인조반정 후 후금(청의 전신)에 대한 외교정책은 광해군대의 외교와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이 이미 조목조목 밝혀져 있으며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 당시 화친정책의 유지를 강력히 주창했던 최명길과 장유, 이귀, 김류, 홍서봉 등이 모두 반정의 핵심인물이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지적이다.

오 교수의 글은 ‘한국사시민강좌’의 특집 ‘국운을 좌우한 외교정책’의 하나로 실린 것이다. 북한핵이 전세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라의 대당 군사동맹과 묘청의 서경천도론, 고려말 조선초 대명외교, 1876년 강화도조약, 한미동맹 등 우리 역사에서 국운을 좌우한 대외위기를 맞아 당시 집권세력들이 어떻게 이를 헤쳐나갔는지를 살펴본 기획으로 일반의 통념을 뒤집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민현구 고려대 교수는 ‘묘청 일파 서경천도론의 허와 실’에서 과거 자주적 국제관과 적극적 대외정책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돼온 묘청 일파의 서경천도운동을 재조명해 당시 대외관계 하에서 칭제건원(稱帝建元)과 금국정벌(金國征伐)이 비현실적이거나 실현 불가능한 공상적인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최영창기자 yc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