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태조왕건’, ‘대장금’에서 최근 방송 중인 ‘해신’ 까지. 드라마 중에서도 사극은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그것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아마도 트렌디 드라마들이 줄 수 없는 사극만의 매력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뭐랄까, 일명 ‘재미의 깊은 맛’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사극을 볼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배우들의 긴 대사이다. 어려운 전문 용어들까지 술술 외우는 장면을 보노라면 존경심마저 든다.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대부분 연기자들은 순간 암기력이 뛰어나다. 드라마 이외에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도 탤런트 출신 MC나 출연자들이 멘트를 잘 외우는 편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런 연기자들이 줄줄 외우던 대사들은 촬영이 끝나면 하얗게 잊혀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사를 그렇게 잘 외우던 탤런트들 중에 현실에선 깜빡 깜빡 건망증 때문에 심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집안에 가스레인지 불을 끄지 않고 외출을 한다거나, 리모컨을 냉장고에 넣고 찾는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건망증 사건뿐 아니라 이런 저런 다양한 건망증에 대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의 카리스마 넘치는 최고상궁 역을 한 여운계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 몇 주 전부터 잊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할 정도로 꼭 참석해서 축하해줘야 하는 결혼식이 있었다. 드디어 결혼식이 있는 토요일 아침부터 서둘러 미용실도 가고, 정장까지 잘 차려입고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축하 인사를 건네려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결혼식 장소는 맞았지만, 결혼식 날짜가 틀렸던 것! 그 다음주에 가보면 이번엔 시간이 틀리고…. 그에게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몇 번인지, 누구의 결혼식을 잘못 알고 그랬는지도 깜빡 했다고 한다.

‘대장금’의 또 다른 카리스마, 최상궁 견미리. 그녀는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어떤 중년 여자가 계속해서 쳐다보며 얼굴을 확인했다. 그 중년여성과 눈이 마주쳤는데도 그냥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미용실 손님이려니 생각하고 별 신경을 쓰지않고 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

몇 분 후, 퇴근을 한뒤 미용실로 견미리를 만나러 온 남편. 남편에게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갑자기 아까 그 여자 손님에게 넙죽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견미리는 아까의 그 손님이 시외숙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자신이 머리 손질을 하고 있던 미용실도 시외숙모의 미용실이었다는 것도 생각났다고 한다!

출연한 사극만해도 한두 작품이 아닌 탤런트 김청은 라디오 생방송이 예정돼 있다는 것을 깜빡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방송 시간이 다 되도록 도착하지 않아 다급해진 작가의 전화를 받고서야 방송이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급히 생방송 스튜디오로 달려가 방송 펑크는 면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 흐르는 기억이라고 한다. 아무리 건망증이 심해져도 절대 잊지 못할 아찔한 기억으로 말이다.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