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학자이자 학술원 회원인 서여(西餘) 민영규 연세대 명예교수가 1일 오전 1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90세.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일본 다이쇼(大正)대 사학과를 나온 고인은 동양사학뿐만 아니라 연희전문 시절 위당 정인보 선생을 만나 양명학의 학맥을 이어받았으며 불교학과 서지학 분야에서도 일가를 이룬 국학계의 거목이었다. 요즘 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강화학(파)’이라는 용어도 고인이 조선후기 양명학의 본거지가 강화도였음에 착안해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연세대에 국내 처음으로 도서관학과(문헌정보학과)를 만들어 서지학 발전에도 기여했다.

1945년부터 80년 정년퇴임 때까지 35년간 연희전문과 연세대 문과대 사학과에 재직한 고인은 중앙도서관장과 문과대학장, 초대 국학연구원장 등을 지냈으며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초빙연구원과 한국도서관협회 이사·회장 등을 지냈다. 조선후기 양명학(강화학)이 한국사상사에서 갖는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강화학 최후의 풍경’과 불교 선종사(禪宗史) 연구논문을 모은 ‘사천강단’, 예수의 생애를 재해석한 ‘예루살렘 입성기’ 등의 저서가 있다. 고인은 일연선사의 인각사 비문을 고증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전해지는 ‘증편조동오위’가 일연의 저서임을 밝혀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위암 장지연상과 용재학술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기식(사업)씨 등 1남3녀.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이며 발인은 3일 오전 10시. 02-392-0299

최영창기자yc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