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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독재’ 한 시절

  • 입력 2004-12-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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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旣視感)이라 했던가, 언젠가 겪은 일이라 싶은데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고, 더러는 긴가민가 미심쩍어지는 그런 느낌을. 심리학의 신비, 일컬어 ‘데자부’다. 정치와 권력의 역사가 그렇고 그렇게 돌고돈단다. 그런가?

1. 한때 권력자의 친일성향을 창씨개명 전비와 함께 다시 따진다.

2. 국회 제1당이 바뀌었다.

3. 북한은 긴급한 민족문제를 앞세워 통일과 발전을 재촉한다.

4. 국군의 ‘문민화’가 간단없다.

5. 대통령이 특정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위헌시비 또한 잦다.

6. 시위가 없는 날이 없다. 그 기세 앞에 어느 헌법기관의 권위가 영 말이 아니다.

7. 학원행정 민주화운동도 하루하루 열기를 더한다.

8. 언론민주화운동 또한 불붙고 있다…아니, 누군가가 불을 지핀다.

9. 적잖은 신문 지면 곳곳에 탄생한지 얼마 안되는 정권에 대한 독재 비판이 차고넘친다.

10. 미국 조야의 동정이 아무래도 심상찮다.

노무현 정권의 안팎 딜레마로 들리는가…아니다, 1960년 제2 공화국의 정치권 안팎이 그랬다. 실은 ‘데자부’도 뭐도 아니다. 역사의 단면들이다. 하긴, 어제오늘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1. 장면 총리의 일제시대 이름이 ‘다마오카 쓰도무’, 장군의 아들 김두한은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짜장면 총리’의 친일경력을 성토했다. 현정부와 여당이 친일 천칭에 올려온 박정희 전대통령은 그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 오십보백보를 빌리면 ‘오십장면 백박정희’다. 박정희가 44년 7월 만주군 소위로 부임한지 1년1개월만에 맞은 해방의 전후사를 찬찬히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46년 5월 부산으로 귀항, 귀향하기 전에 머물렀던 광복군 제3지대의 성격을 규명하자는 논의도 거의 없다.



2. 60년 7월29일의 제5대 총선은 얼마전까지 핍박받던 민주당의 압승. 하지만 “국민은 또 일당독재를 염려할 현실”(신석호)이라는 지적에 이어, 국회는 “정권을 잡는게 목적이 아니라 정책구현이 목적 아니었느냐”(곽상훈 민의원 의장)고 몰아붙였다.

제17대 4·15총선과 열린우리당의 국회 과반수 의석 확보도 지난 봄 한철 얘긴가. 새 국회 6개월은 4-5-6, 국론 4분5열의 6개월이다.

3. 김일성은 그해 8월15일 남북연방 통일방안을 처음 내놨다.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론이 시도 때도 없더니 노 대통령은 11월25일 ‘지금 그런 것 할 때 아니다’라는 식으로 스리슬쩍 잘랐다. 그 전후의 이종석 특사론 혹은 김대중 특사론은 또 무슨 말들이었는지….

4. 문민화 국군? 군이 대체불가능한 전문가집단이라면 전문성 담론은 왜 안들리는가.

5. 윤보선 대통령이 4·19 발포 관련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독려해 법치주의의 틀을 넘어섰다.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한 수도이전법의 ‘성형론’ 또한 헌재의 법금을 넘나든다.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그짝이라고 한다.

6. 시위? 혁명 후 그 시절이 오죽했으랴. 경제개혁에 목마른 시민이 누린 자유는 “배고픈 자유, 실업의 자유, 생명과 재산권을 위협받는 자유”(서석순)였다. 그래도 그땐 솥단지 시위는 없었다. 이듬해 5·16직전 서울역 앞에서 성매매 합법화 요구시위가 벌어졌으니, 세상은 생각만큼 바뀌진 않는가 보다.

7. 학원은 보수의 온상이라 민주화가 유일한 처방? 지금은 사립학교법을 못고쳐 저리 안달들이다.

8. 언론의 백화제방, 그러나 ‘정권의 나팔수’인 방송은 달라지긴커녕 44년여 변함없다.

9. 새로 등장한 민주정부라서 신문때문에 할 수 있는 일 하나도 없단다. 늘 들어온 권력의 언론관이다. 한결같다.

10. 미국은 당시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보고 곧 등장할 군사정권을 가늠하고 있었다. 지금은 북핵문제를 둘러싼 ‘민주공조’와 ‘국제공조’의 평행선 화법과 한반도 지도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른다.

[[홍정기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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