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 당국자들은 산업 클러스터(기업도시)라는 말을 드러내놓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이징(北京) 서북부 하이뎬(海淀)구 일대의 중관춘(中關村)이 성공한 기업도시의 전형이라는 사실에는 흔쾌히 동의한다. 중관춘이 비록 베이징의 일부 지역이기는 하나 총생산액이 2003년 기준으로 1300억위안(元·18조2000억원)을 돌파, 웬만한 성(省) 수준의 경제 주체로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면서 연구개발(R&D) 메카로 군림하고 있는 사실까지 상기하면 중관춘은 실제 대륙 최고 클러스터로 불려도 부족함이 없다.

남의 런민(人民)대학 앞 바이스차오(白石橋) 앞에서 북의 상디(上地)정보산업단지까지의 반경 약 5㎞를 아우르는 중관춘의 탄생은 지난 198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정부가 당시 첨단 과학기술 발전 촉진을 위한 장기 전략의 하나로 이 일대를 ‘제1호 첨단기술개발구’로 지정한 뒤 본격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관춘이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이나 특징은 중국 최고 전통의 대학가라는 이 지역의 특성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베이징대와 칭화(淸華)대, 유뎬(郵電)대를 비롯한 30여개 명문대들이 제공하는 과학 기술 실적과 해마다 이곳에서 배출되는 4만여명의 인력들이 중관춘 발전의 실질적인 원동력이었다. 장핑(張平) 유뎬대 교수는 “IT 메카 중관춘 탄생의 불은 정부가 지폈으나 이를 확산시킨 주체는 주변 대학과 인력들”이라고 잘라 말했다. 장 교수 말대로 현재 중관춘에는 중국 내에서 가장 많은 200여개의 연구기관이 입주, 30여만명의 과학기술 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

하이구이(海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귀국 유학생들의 존재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대부분 외국 명문대 이공계 분야에서 수학한 뒤 실리콘 밸리 등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 런던경제대 출신인 칭화대 과학기술개발부 마쥔(馬軍) 박사는 “해외에서 중관춘으로 귀국하는 인력들은 곧바로 산업체나 연구소에 투입 가능한 최고급 수준”이라면서 중관춘의 발전에 기여한 하이구이들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지난 90년대부터 매년 평균 수백여명씩이 귀국, 취업하거나 창업에 나서 총 인원이 5000여명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중앙정부와 베이징시, 기업, 대학, 연구소의 협력 시스템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다는 점도 중관춘의 특징이다. 예컨대 정부와 시는 ‘중관춘 과학기술단지 조례’ 등의 각종 법적 근거를 마련, 기업들에 대한 세제혜택, 금융지원, 규제완화 등의 지원책을 강구한다. 그러면 외국계 기업 500여개를 포함한 1만여개 역내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은 기술공유와 공동 연구 개발, 이익 균등분배와 같은 소위 합종연횡식 산학연(産學硏) 협력으로 화답해 경쟁력 강화에 힘쓴다.

특히 대학 자체가 평균 10여개 이상의 연구소, 기업을 운영하는 중관춘식 시스템은 무엇보다 강한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중국내 유수의 전자업체로 손꼽히는 베이징대 산하의 베이다팡정(北大方正), 칭화대 계열의 칭화즈광(紫光)이나 칭화퉁팡(同方)의 존재는 다름아닌 이런 시스템의 산물이다.

산업 클러스터 배후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지고 있는 것 역시 중관춘이 주목을 받는 이유다. 역내 곳곳에는 귀국 유학생 자녀들을 위한 외국인 학교와 극장, 컨벤션 센터 등의 각종 문화 시설, 대형 병원, 아파트 단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중관춘이 국제형 도시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배후시설 확장을 위해 중관춘의 대부분 거리가 공사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관춘 출발 자체가 정부 당국의 강력한 의지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소나 기업, 현장에서 활동하는 인재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만 하면 된다. 정부는 또 기업에 소득세 및 부가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에 대한 감면특혜를 주고 있다. 세계 500대 기업을 비롯한 유수의 외국 다국적 기업들이 지사나 연구소 설립을 검토할 때 최초의 입지대상으로 중관춘을 가장 먼저 검토한다는 인터넷 업체 이허(易和) 한원(韓文) 사장의 말은 그래서인지 별로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베이징〓홍순도특파원 mhh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