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시 건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기존 산업단지모델이 더 이상 지식기반 사회에서 성장엔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각국에서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유력기업들이 한 군데 모여 연구개발(R&D)부문, 부품생산, 완성품제작, 마케팅까지 공동작업을 벌이고 있다. 분야별 전문성을 높이고 가치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기업도시, 산업클러스터, 혁신클러스터 등이 전통적인 산업단지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성공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할리우드, 스웨덴 시스타 사이언스시티, 핀란드 울루, 영국 케임브리지ERBI, 일본 도요타(豊田)시, 중국 중관춘(中關村) 등 수없이 많은 기업도시들이 있다. 형태도 도시특성에 따라 실리콘밸리와 같은 R&D형, 문화도시형(할리우드), 산업도시형(도요타시), 바이오도시형(레버쿠젠) 등 다양하다.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대기업주도형, 대학·연구소주도형, 업종별 협회주도형, 지방주도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들 기업도시의 성공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클러스터 형성에 반드시 대기업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스웨덴 시스타 사이언스시티의 경우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을 확보한 에릭슨사가 핀란드 노키아사와 미국의 IBM을 불러들였고, 동시에 우수인력을 확보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둘째는 구성 주체들간의 분명한 역할분담이다. 기업도시 총체적 비전을 제시하는 비전제시자(Vision Provider, VP)와 VP의 비전을 구체화해 상업화하는 시스템 통합자(System Organiger, SO), 회계사 변호사 등 각종 지원서비스를 맡는 전문요소공급자(Specialized Supplier, SS)가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구성주체들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도 특징이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연구단지와 생산지가 분리된 경우가 허다하다. 첨단 신산업분야의 R&D 역량 역시 빈약하다. 산학협력 유인부재는 물론 교육·문화 등 배후시설의 분리 등 취약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만큼 기업도시의 필요성이 절박한 상황이다. 정부나 기업이 기업도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와 기업은 기업도시 건설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몇 가지 점에서 강조점을 달리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기업도시가 국토균형발전, 수도권 인구과밀화 해소, 국제경쟁력 확보, 지방경제 활성화, 기업의 투자촉진, 고용창출 등에 기여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발전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도시 건설 방식에 대해서는 다소 생각이 다르다.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것은 ‘혁신클러스터’다. 말 그대로 기존의 산업, 연구단지를 취약점을 보완해 혁신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산업단지의 경우 R&D 기능을, 대덕단지에는 생산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지난달 3일 국정과제회의를 통해 기존 단지는 혁신역량을 분석한 뒤 확대키로 하고 구미(전자) 창원(기계) 울산(자동차) 반월시화(부품소재) 광주(공산업) 원주(의료기기) 등 6개 시범단지 클러스터 육성방안을 내놓았다.

반면 기업은 정부가 제시한 혁신방식보다는 새로운 기업도시 건설을 선호하고 있다. 처음부터 백지 위에 새 집을 짓자는 논리다. 기업이 특히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은 산업클러스터 형성을 기본으로 하되, 주택·의료·학교·문화시설의 동시건설이다. 기업도시 건설 주체 역시 정부주도보다는 기업주도-정부지원 형식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혁신클러스터는 ‘현실성’, 경제계의 기업도시는 ‘기업독주’의 문제점을 이유로 정부와 기업이 서로 경계심을 보여왔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혁신도시는 기업이 참여하지 않는 한 현실성이 없다”며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이루어져야 혁신도시도 빛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도시에 대해 ‘개발이익’과 ‘각종 혜택’ 요구를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정부의 지역혁신 클러스터 정책과 행정수도 이전정책, 재계의 기업도시 정책은 모두 지방육성 전략”이라며 “이러한 각 정책이 어느 시점에서는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의 연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올해 법제도가 마련되면 기업도시 건설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올 전망이다.

김교만기자 baikal2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