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1987년 6월 연세대생 이한열의 장례식때 문익환은 절규하듯 이렇게 외쳤다.

“이한열 열사여, 박종철 열사여, 전태일 열사여, 김경숙 열사여, 박종만 열사여…”

끝도 없었다. 그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수많은 열사들의 이름을 겹치지도 않고 정확히 불러나갔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사람들은 따라 외쳤다. 그것은 시청 앞에 모인 백만 개의 소우주가 마음을 한데 모아 주고받는 거대한 댓거리였다. 문익환만이 해낼 수 있는 한 편의 장엄한 이벤트. 그러나 그것은 그가 시인이기에 가능했던 이벤트였다.

문익환은 시인이었다. 1973년 시집 ‘새삼스런 하루’를 펴낸 이래, 1994년 숨을 거둘 때까지 ‘꿈을 비는 마음’, ‘두 하늘 한 하늘’,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등의 시집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족적이 워낙 ‘정치적’ 성격을 많이 띠었기에, 시인으로서 그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대접을 받은 면이 없지 않다.

심지어 그가 회원으로 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조차도 딴 회원들을 위한 구속문인의 밤 행사는 잊지 않고 열어 주어도, 그를 위한 구명운동은 종종 빼먹곤 했다. 물론 그건 그가 신랑이 새색시 방 가듯 하도 많이 감옥을 들락거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당사자는 자실이 개최하는 중요한 행사에 행여 초청받지 못하면, 저만 세뱃돈을 못 받은 어린아이처럼 노골적으로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는 그가 이 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그야말로 온몸을 다 던져 헌신했던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그를 새삼 시인으로도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는 신학자요 목사였다. 따라서 누가 “도대체 당신은 두려움도 없냐”고 물었을 때,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내 빽이 든든하거든”하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신학, 그의 목회 역시 늘 시인의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이들은 그런 그를 가리켜 ‘시인콤플렉스’에 걸려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실, 그는 북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시인 윤동주를 한뉘 마음에 담고 살았다. 그는 지치고 괴로울 때마다 윤동주의 ‘서시’를 외었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읊조렸다.

윤동주의 시처럼 그의 시도 난해하지 않았다. 우리말에 대해 지극한 애정을 갖고 있던 그는 시란 모름지기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를 당대 최고의 시낭송가 성내운이 읊는 광경을 본 사람들은 쉬운 시가 그토록 힘이 넘치며 뭇가슴을 절절하게 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하곤 했다.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소?/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 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땅 한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꿈을 비는 마음’ 일부)

문익환은 여섯 차례에 걸쳐 십오 년이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 그리고 꿈속에서조차 아무도 감히 넘으려 하지 않았던 휴전선을 뛰어넘어 평양으로 향했던 것은 그가 투사이기 전에 시인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모름지기 시인이란 늘 꿈을 꾸는 자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