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의 역사를 작곡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결코 연주의 역사를 음악의 역사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위대한 연주전통이란 위대한 작곡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연주를 위대하게 만드는 작곡이 그 문화전통에서 샘솟지 않는 한 연주는 나의 삶속으로 내면화되지 않고 형해화되어 버린다. 한낱 모방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산조의 명인들은 위대한 연주자인 동시에 위대한 작곡자였다. 그들의 연주는 단순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창작이었다. 그들의 연주는 곧 작곡이었다. 연주가 그만큼 자기 삶의 전통속에 내면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악보가 객관화되어 있지 않던 시절, 연주와 작곡이 미분화되어 있었던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속에서 위대한 작곡은 계속 이루어졌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휘날리는 화려한 연주자나 지휘자는 있으되, 막상 우리삶의 감성을 표현해주는 위대한 작곡자는 별로 없는 우리나라 음악계의 현실속에서, 아무리 외국으로부터 위대한 연주단이 내한하여 찬란한 선율을 선보인다 한들, 그것은 끊임없는 선망과 외향(外向)의 쳇바퀴일 뿐, 우리나라 음악문화를 본질적으로 향상시키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요상한 상류문화병만 조장시킨다고 평소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는 본시 그러한 공연장을 즐겨 찾지 않는다. MBC공연기획팀이 나에게 찾아와 빈 필 공연팸플릿에 글을 써달라기에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어렵게 굴러들어온 영광스러운 기회를 거절하는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그 팀장을 나는 어처구니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MBC 이긍희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빈 필 공연티켓을 두장 보내겠다는 것이다. 요즈음 나는 MBC도올특강에서 정도전이 끝나가는 바람에 새 인물을 준비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특히 동학에 관한 자료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 울렁거리고 눈물이 쏟아진다. 그리고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원망스러워진다. 그러나 이렇게 고생하는 나를 빈 필의 감미로운 선율로 위로해주시겠다는 사장님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R석 154·155번 티켓 두장이 메일로 날아왔다. R석 35만원이라니 난 굉장한 로열석에 오스트리아 황제처럼 앉아 있으려니 하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리고 옷도 T자 모양의 고급스러운 무늬가 길게 축 늘어진 예복을 골라입었다. 그러나 막상 세종문화회관에 당도했을 땐, 날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쓸쓸히 좌석을 찾아가보니 일층 왼쪽 구석의 후미진 자리였다. 옆에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다닌다는 좀 철없게 생긴 여학생이 앉아있었는데, 뭐 그리 나쁜 자리도 아니었지만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집에서 ‘동경대전’역주작업이나 계속할 걸….

슈베르트,브루크너 음악 시대정신 맞춰 극적해석

그러나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달라진 세종문화회관의 모습이었다. 먼저 새롭게 설치된 의자와 의자 뒷면에 개별적으로 설치된 자막 스크린이 눈에 띄었지만 무엇보다도 오크무늬의 나무톤으로 장식된 실내의 전반적 느낌이 우리나라 어느 공연장보다도 탁월했다.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의 권위주의적 대회당이 이제야 순수한 예술의 전당으로 탈바꿈된 느낌이 들었다. 바닥도 나무였고, 의자가 60㎝정도가 높아져서 아주 편안한 시각선이 형성되어 있었다. 공조 시스템이 의자밑으로 들어가 소음이 없어졌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세종문화회관의 최대결함이었던 음향의 불균형문제가 현저하게 개선되었다는 것이었다. 공공기관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일 때마다 전문성없이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고 항상 개악의 결과만 초래하던 관례에 비추어볼 때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모습은 하나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예능부장을 불러 알아보니, 천정과 벽에 252개의 음향보정스피커가 들어갔고, 파이프오르간도 메모리시스템이 대폭 강화되어 흡족한 연주가 이루어지도록 오버홀되었다 했다. 무대마루도 150년 묵은 캐나다산 옐로우 씨다로 바꾸었고 세트 바튼도 22개에서 36개로 늘렸다 했다. 전반적으로 알차게 투자되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가교, 슈베르트 그 역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활약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슈베르트의 8번째 교향곡 b단조, ‘미완성’(Unvollendete)이 그가 31세로 요절했기 때문에 완성치 못하고 남긴 유작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미완성교향곡은 25세(1822) 슈베르트의 최전성기때의 작품이다. 이 곡은 그가 슈타이어음악협회 명예회원으로 추천된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그 협회의 위원장이며 작곡가인 안젤름 휘텐브렌너에게 선물했는데, 안젤름은 제3악장 이하가 도착하리라 생각하고 연주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 악보는 그렇게 안젤름의 서랍속에서 긴 시간 사장되어 있었다. 슈베르트의 기억속에서도 그냥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죽은지 37년 후, 1865년 5월, 빈의 지휘자 요한 헤르베크는 안젤름에게 보내진 슈베르트 미발표 교향곡 악보가 있다는 증언을 듣고 수소문 끝에 이 희대의 걸작품을 찾아냈다. 헤르베크가 지휘하는 빈 필은 이 작품을 이 해 12월에 초연한다. 열광의 파도가 전유럽을 휩쓸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은 지금까지도 그것을 초연한 빈 필의 연주로 들어야 제맛이 난다는 정평이 있다. 처음 현악기의 신비롭고 나지막한 선율, 오보에로 제시되는 아련한 제1주제에 이어, 첼로가 이끄는 풍성하고 절절한 제2주제가 얽혀간다. 빈 필 오보에의 독특한 맛은 추종을 불허한다. 빈 필의 관악기는 배음이 풍부해 음색이 밝고 화려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럽다.

드디어 나타났다! 세이지 오자와! 내가 하버드에 유학하고 있던 시절 오자와는 보스턴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섬세한 표현으로 정평이 높았다.

내 눈앞에 나타난 오자와는 우선 가냘픈 몸매의 날렵한 피노키오 같았다. 지휘봉도 손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탁자에는 악보도 없었다. 그는 토스카니니처럼 그가 지휘하는 모든 음악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매개없이 손짓·발짓 온몸으로 심포니에 뛰어드는 그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여량(呂梁)폭포에 뛰어드는 ‘장자’(莊子) 속의 신인(神人)과도 같았다. 천길 폭포속에 휘말려도 허우적거림없이 유유히 헤쳐나와 머리를 풀어헤치고 강둑에 노니는 그 신인은 이와 같이 말한다: “헤엄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헤엄치는 것, 그것이 나의 천명이올시다.”(不知吾所以然而然, 命也.) 오자와의 지휘, 그것은 신유(神遊)였다.

지휘봉,악보도 없이 온몸으로 지휘,빈필 새롭게 리드

슈베르트 ‘미완성’의 초기낭만주의적 부드러움에 비하면,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의 교향곡2번 C단조는 금관악기의 강력한 익스프레션이 현악기를 압도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혹자는 빈 필의 타성과 오자와의 지휘가 따로따로 놀았다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브루크너 작품의 오리지널한 성격을 곡해한 무지스러운 평가일 뿐이다. 오자와는 마에스트로답게, 슈베르트는 아주 슈베르트적으로, 브루크너는 아주 브루크너적으로 그 다른 시대정신을 극적으로 해석해내고 있었다. 경이로운 만남이었다. 빈 필이 오자와를 만났고 나 도올은 그 만남을 또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새단장 성공적, 음향 현저히 개선

공연이 끝난 후, 난 공연본부장 강신구선생의 도움으로 오자와가 후유~하고 있는 무대 뒤 분장실로 찾아갔다. 대학시절의 은사 같은 생각이 들어 한번 인사나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를 수행하고 있는 여직원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오자와선생이 날보고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땀에 흠뻑 젖은 연미복을 벗어버리고 유카타를 입고 있었는데도…. 당황한 여직원이 어색하게 말했다.

“히 이스 에이 베리 베리 프로미난트 프로페서.”

좀 궁색한 영어였고 나에 관한 구체적 정보가 포함되어 있질 않았다.

“와타쿠시와 테쯔가쿠오 야루 모노데스.”

난 다짜고짜 일본말로 날 소개했다. 그랬더니 오자와는 내 손을 잡고 자기 옆에 날 앉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데….”

“전 77년부터 82년까지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검지로 자기 가슴을 가리킨다.

“난 그때 보스턴 심포니에 있었지요. 그때 어디서 만났나요?”

“전 그때 이름없는 학생이었고 선생님은 너무도 유명한 분이었죠. 이 순간 선생님을 처음 뵙습니다.”

“오늘 공연 어땠어요?”

“너무도 너무도 훌륭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세이지 오자와와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나는 아내와 우산 속을 걸으면서 말했다: “오자와는 해탈인이야.” 내가 그를 마에스트로로 대접하는 만큼 그는 순간 나를 마에스트로로 대접할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을 생각했다: “불타는 석양이 동·서 어디서나 아름답듯이 음악은 인류 모두의 것이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1일 오후 7시45분, 북과 세각의 명인 흑우(黑雨) 김대환(金大煥)이 영면했다. 그는 검은 비처럼 살고 지나갔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마에스트로였다.

도올 김용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