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북아시아 사람끼리 잘해 나가야 서양(미국)의 세력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는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고 나아가서 아시아 대륙 전체를 연결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1907년 29세의 도산(島山) 안창호선생에게 그 당시 한국에 총독으로 나와있던 66세의 노련한 일본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 말이다.

바로 작년 이맘때 노무현 대통령도 이와 거의 같은 말을 해서 인기를 얻었다. 남북한의 철도가 연결되면 한반도가 중국 러시아 유럽까지도 연결해서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구심점이 된다는 꿈이었다. 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프랑스에 유학하는 한국 학생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파리까지 갈 수 있다는 낭만적인 말로 언론을 장식했고 한국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요즘 세상에 비행기로 가면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며칠씩 걸려서 부산에서 파리까지 기차 타고 갈 유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 말은 현실적인 면보다 그 말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한국인에게 자긍심을 높여 주었기 때문에 한국의 젊은층의 정서에 어필할 수 있었다.

일년이 지난 오늘 몇 사람이나 이런 노 대통령의 말을 기억할까? 오늘 한국뉴스의 초점과 비교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생긴다. 그러나 한편 약 100년 전에 이토 히로부미가 도산 안창호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는 사실 또한 우리를 놀랍게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한국을 일본에 합병시켜서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까지 먹을 계산을 하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의 말과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고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주축이 될 것을 약속하며 출범한 새 정권의 주인공 노 대통령의 말이 너무나 흡사 하다는 점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했던 이런 종류의 말은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말이 새로 선출된 대한민국의 대통령 입에서 나왔든지 100년 전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려는 음모자의 입에서 나왔든지 이러한 말이 가지는 호소력을 우리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이 지형학적으로 한반도라는 대륙에 연결된 반도에 한국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반도마저 둘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말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반도인’이라는 자아의식을 역사적으로 가지고 살아 왔다. 섬나라 사람들은 섬나라 사람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다. 섬에 살고 있다는 열등의식 때문에 대륙을 지배해보려는 야심이 항상 있다.

영국이 가졌던 대영제국의 꿈, 일본이 가졌던 대동아시아의 야심 등이 그것이다. 반도 사람들은 반도사람 나름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음을 부인 못한다. ‘반도인’들은 섬과 대륙을 연결하는 교두보적인 역할뿐 아니라 대륙의 입구요 첨단으로 자처한다. 반면에 ‘대륙인’들은 대륙인들 나름의 멘탈리티가 있어서 중국같은 나라는 항상 자기주변의 나라들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근성이 있다. 요즘 중국이 고구려 역사까지 자기 역사라 생고집하는 것도 다 이러한 멘탈리티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확실히 한국인들의 이러한 ‘반도인의 멘탈리티’를 잘 파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애국자나 독립투사 민족주의자도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코드’를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는 이 코드에 넘어가지 않았다.

단순히 코드가 같다고 그 코드가 의미하는 뜻이 다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안창호 선생은 코드를 넘어서서 코드가 의미하는 뜻을 안 분이었다. 한국사람들이 잘 넘어가는 코드는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지정학적 조건이 변하지 않은 이상 앞으로도 이러한 코드는 한국인들에게는 같은 매력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바로 코드가 가진 위험성이 있다. 코드만 외치고 코드가 맞는지 안 맞는지만을 따지는 단계는 한국의 민족주의나 통일이념이 넘어가야할 거침돌이다. 코드를 외치고 선전하는 사람은 코드 선전가(advocate)나 코드를 판매하는 판매원이다. 그러나 이 코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복합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그 의미를 풀어내는(deciphering) 작업이 한국의 지성이 해야할 과제이다.

[[노영찬 / 美 조지메이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