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창세기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라는 두 성이 너무 악해서 하나님이 유황불로 멸망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이 두 성이 멸망할 때 천사들이 내려와서 이 악한 성에서 선한 사람 룻의 가정을 선택해서 살려준다. 그런데 천사들은 룻의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갈 때 자기들이 살던 이 성을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그러나 룻의 아내는 이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들이 살던 성에 대한 애착 때문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소금기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사해 근처 옛 소돔성이 있던 곳에 가면 이 소금기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가 이미 떠난 과거에 집착해서 과거를 자꾸 돌아보는 사람은 소금기둥으로 변하는 저주를 받고 만다는 의미가 이 이야기 속에는 포함되어 있다.

서구문명을 지배해온 유대-기독교의 역사관은 직선적(linear) 역사관이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분명히 구분되는 시간관이었고 역사관이었다. 이러한 역사관에서 보면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로부터 과감한 탈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는 죽은 것이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단절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집착해야 하는 것이고 현재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단계이기 때문에 현재자체로서는 어떤 의미나 가치는 없는 것이고 미래와 연결될 때만이 현재가 의미를 찾고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미래가 없는 현재는 의미가 없다는 미래지향적 사고방식과 목적론적(teleological) 역사관이 서구문명이나 기독역사관을 이루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동아시아 문화권, 특히 한국적 역사관이나 시간의식은 결코 직선적이 아니고 오히려 순환적(cyclical)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과거가 단절된 것이 아니다. 과거를 쉽게 버릴 수 없다. 과거 없이는 현재가 없다. 현재를 알고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과거를 보면서, 그리고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내다보았다. 과거를 보지 않고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미래로 돌아간다(back to the future)’라는 말이 의미 있는 말이다. 우리의 전통적 시간관이나 역사관은 과거, 현재, 미래를 따로 따로 분리해서 일직선상에 세워놓는 일차원적이고 일선적 시간관이 아니고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물려서 돌아가는 다원적이고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시간관과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과거는 죽은 것과 옛 것의 상징만은 아니다. 그러기에 공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옛것을 모르면 새것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풍토가 새로움을 갈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에게 과거는 너무나 부정적으로 나타나 왔기 때문에 과거는 부정적 가치로만 이해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정치 사회 문화 일반에 걸쳐서 새로운 세대가 가지는 긍정적 가치관은 바로 이러한 과거가 가져온 부정성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과거나 옛것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혐오감은 우리의 전통적 시간관과 역사관을 부정하고 서구적 시간관과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우리의 역사나 전통을 이해하려고 하는 의도를 무의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한국의 엘리트층을 이끌어 가는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와 구세대에 대한 부정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비리와 부패는 기성세대 및 구세대와의 단절에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다. 1970년대 문화혁명이 중국천지를 휩쓸 때 과거를 대표하는 유교전통에 반대하는 반공(反孔)운동 즉 반 유교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유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걸어온 과거가 부끄럽고 혐오스럽다 하더라도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 보아야한다. 과거를 보는 것을 마치 소금기둥이 되는 저주를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도 보지 못함을 아는 지혜를 가질 때만이 참다운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영찬 / 조지 메이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