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전 국제 중국 철학회가 베이징(北京)대학에서 열렸을 때 발표차 참가한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베이징대학에 많은 한국유학생들이 와 있음을 보고 놀랐다. 베이징대학 대학원에 유학온 한국학생들은 미국에서 온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나를 자기들 교수에게도 소개 시켜 주었다. 베이징에 있는 동안 한국유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참으로 즐거웠다. 우리는 중국의 정치이념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때 한 유학생이 나에게 해 준 말을 잊을 수 없다. 베이징대학의 어느 중국학생이 학교 서점에서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에 관한 책들을 사고 있기에 너는 마르크스나 공산주의 이론을 좋아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학생은 “아 요즘 중국에서 마르크스나 공산주의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학 졸업시험을 위해서 할 수 없이 마르크스이념이나 공산주의를 공부하는 것 뿐 입니다” 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그때가 10년 전이니 지금은 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요즘 미국대학에서도 30년전 인기를 누렸던 마르크스주의가 사양길에 들어선지 오래다. 나의 동료 교수 가운데 헤겔(Hegel)과 마르크스(Marx)를 전공한 한 분은 이제는 마르크스에 관한 과목을 택하는 학생들이 없어서 아예 다른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마르크스나 공산주의 이념의 쇠퇴는 공산주의 국가 자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말 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도 이제는 공산주의 체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후진타오(胡錦濤)가 이끌고 가는 중국에 많은 변화가 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북한과의 문제다. 중국과 북한은 이념적 친구로서 과거 반세기를 지내왔다.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위해서 100만이 넘는 중공군의 죽음도 감수 할 수 있었던 혈맹의 관계였고 지금도 북한에 식량이나 연료의 80%를 제공해 주고 있는 중국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라는 이념이 언제까지 이 두 나라를 계속 묶어 줄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미 중국은 공산주의라는 정치이념 보다는 자본주의나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지난 8월 베이징 6자 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실험해서 명실공히 핵국가로서의 인정을 받겠다고 미국을 위협하고 나왔을 때 북한에 대해서 가장 불쾌한 반응을 보인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만약 북한이 명실공히 핵무기국가로 부상하게 되면 중국은 핵무기 국가들로 자기들의 울타리를 장식하게 되는 위험한 상태를 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파키스탄, 인도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 국가로 들어서면 일본, 대만까지도 핵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은 북한이 핵무기국가로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나오면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제 한반도의 안보가 보장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부류도 있긴 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필연성을 이미 후진타오 정부는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것이야 말로 중국의 악몽이다.

이제 중국은 공산주의라는 이념보다는 자기들의 국익에 입각한 외교를 펴고 있다. 중국이 세계무대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마오이즘”이나 공산주의 이념이 아니라 시장경제와 개방된 무역정책이었다. 심지어는 적국으로 간주되어온 대만의 호감을 사게 된 것도 중국공산주의이념이 아니라 대만과의 무역관계와 경제적 호혜관계를 내세웠기 때문에 대만의 보수층까지도 설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정치체제상 공산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나 시장경제로 괄목할만한 발전을 가져왔지만 정치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 중국이 가지는 한계와 고민이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나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는 여기에 걸맞는 정치체제나 사회제도가 밑받침 해 줄 때만이 그 저력을 최대한으로 발휘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공산주의 정치체제라는 서로 맞지 않는 쌍두 마차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지난 7월1일 홍콩시가를 누볐던 50만명의 대규모 시위는 중국의 후진타오로 하여금 경제적 자유주의만 아니라 거기에 맞는 정치적 자유도 부수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 美 조지메이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