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장군의 혈통은 못속여 여의도 여장군이 따로 없어.’ 장군의 손녀 김을동이 여의도 스타들 연기를 지도해주는 명강사로 이름을 떨치자 PD와 연기자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탄성이다. 신인도 아닌 스타급 탤런트들이 은밀하게 연기레슨을 받은뒤 안방극장에서 빛을 발하며 인기 수명을 연장하는 일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만나보았다.

“방송3사 PD들이 제 사무실로 보내주는 연기자가 하도 많아 가르친 신인들의 이름은 기억조차 못해요. 제 할일도 많은데 연기지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고….” 지난 99년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를 여의도에 설립하고 해마다 ‘청산리구국대장정’ 행사 등 사업을 해온 김을동. 그녀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지난해 SBS TV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자문역까지 맡았다. 그녀의 사무실에 드나드는 탤런트는 또 좀 많은가. “제 방을 스타 양성하는 연기교실로 착각하는 손님도 있을 정도지요. 하하하….” 일에 치여 지내는데도 지친 표정이 없는 그녀의 호탕한 웃음은 여전했다.

그녀가 연기지도에 남다른 노하우를 지녔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80년대 중반 방송가에서 알만한 PD들은 그녀를 ‘김사단장’으로 불렀다. 마치 군대에서 부관이 사단장을 모시듯 그녀를 따르는 미남 탤런트들도 제법 많아 붙여진 호칭이다. 신인 시절의 박상원·유동근·전광렬·윤승원·안승훈·나한일·장승화(영화배우) 등이 김을동사단 멤버들이다. 이처럼 김을동이 스타 군단을 거느리게 된 건, 거구에다 보스다운 기질이 있는데다 탁월한 연기지도 테크닉 덕분이라는 게 PD들의 평가다.

요즘도 이들 스타 군단이 새 드라마를 맡으면 그녀를 찾아 지도를 받고 간다고 한다. 그녀는 외롭지 않은 연기스승임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들 외에도 그녀한테 연기레슨을 받은 스타가 많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자 “혹시 그 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아닐지”하고 한참 망설이다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여인천하’에 캐스팅되었다며 (유)동근이 마누라(전인화)가 전화를 했어요. 대본을 받았지만 어떻게 배역을 소화해야할지 막막하다며…. 사무실로 불러 리딩(대본읽기)을 해보았는데 처음엔 문정왕후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주고 연기지도를 해줘야 할지 나도 막막했어요. (전)인화를 ‘가냘픈 체격에 단정한 미모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기품을 지닌 문정왕후’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연습하다 고개를 움직이는 인화에게 고개를 안움직이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언뜻 떠오르는 거예요. 이거다! 하고 한수 가르쳐준 게 난정이(강수연)와 불꽃튀는 연기 경연으로 이어지며 성공작이 됐죠.” 사소한 것 같았지만 전인화가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여 무거운 가발을 쓰고도 인내하면서 열연해 주었다고 김을동은 열변을 토했다.

“이미연은 ‘명성황후’에 캐스팅된 뒤 PD 요청으로 제 사무실에서 연기 틀을 잡아갔지요.

미시 모델에서 탤런트로 변신한 변정수, 미스코리아 출신 손태영도 제 연기 문하생이죠.” 김을동은 자랑을 너무 늘어놓는 것 같아 쑥스러우니 그만 하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신일하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