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귀한 줄 모르는 투자자들이 헝그리 정신으로 충무로를 지켜온 우리 영화인들의 허파에 바람만 불어 넣었어요.”

‘충무로 소통령’으로 불리는 강우석 감독이 내뱉은 독설에 가까운 혹평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예스터 데이’ 등 연속 흥행 참패로 암운이 드리워지는 충무로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를 만난 건 지난 9월초. “외부 투자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도 (충무로의)토착 자본이 축적되어 우리 영화의 생존을 지켜나가는데 지장 없다”며 그가 자신있게 말하는 걸 들었다.

강감독처럼 헝그리 정신을 발휘하며 충무로를 지켜온 중견 영화인들과 술자리에 어울리면 자연스레 70~80년대 힘들었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 취기가 고조되면 필자의 소설 ‘광화문에 소나무를 심자’가 술안주가 되어 비판을 받는다. 그들이 지켜온 충무로를 어둡게만 본 것 같아 섭섭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보다 금전만능주의 영화제작자들이 판을 쳤던 건 부끄러운 우리 영화사의 일면이라며 영화흥행사대표 H(58)씨가 체험담을 털어놓았다.

“당시(70년대) 유명 화가 A씨가 있잖아. 그는 우리 회사 없었더라면 그림을 팔아먹지 못했을 거야.

돈 생각나면 전시회를 했는데 그럴 적마다 안 팔리는 그림을 싹쓸이 해주었으니….” A화백이 전시회를 할 거라는 전화 연락이 오면 도록 제작비를 지원해주고 전시회를 열면 축하 화분을 보내주었는가 하면 팔리지 않은 작품이 있을 때 몽땅 구입해주었다는 것.

H씨는 “내직책이 말이 영화사 기획자였지 하는 일은 외화수입쿼터를 따내기 위한 로비 담당직원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A씨가 대종상과 우수영화 심사위원을 하는 유명인이라 그처럼 매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A씨가 심사위원 명단에서 빠진 걸 알고 한번은 그림을 안 사줬어. 그랬더니 다음에 심사위원이 된 후 즉각 보복을 하더군. 점수를 안줘서….”

그런 일을 경험한 뒤 A씨의 전시회 때마다 그림을 전부 처분해 주었다고 말한 H씨가 갑자기 자신의가슴을 콱콱 쥐어박는 바람에 술좌석에 있었던 영화인들이 모두 놀랐다. “아니 왜 그래. 술이 받지 않는가. 약을 사올까?”하고 걱정하며 그의 술잔을 치우려 하자 H씨는 “그게 아니고”하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은 선견지명없이 영화사 일만 해와 이제껏 집 한 채를 장만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아파트 건축 붐이 일며 A씨 그림 값이 호당 수백만원으로 뛰었잖아. 그때 그림 몇 점을 챙겨 두었더라면 그걸 팔아 몫 돈을 장만했을 거야. 팔리지 않은 그림들을 가져오면 회사 지하 창고에 처넣었거든. 그림 값이 뛰고 생각나 창고에 가보니 몽땅 없어졌어.”

그러면서 “요즘 피자세대들에게 그전 얘기해주면 나 보고 개그하세요?”라며 의아해한다는 H씨의 모습은 너무나 서글퍼 보였다.

/신일하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