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에서 영상미 넘치는 스타들의 키스 장면은 시청률을 크게 좌우한다. 지난해 방송된 배용준 최지우 주연의 KBS TV ‘겨울연가’는 연인들의 사랑을 환상적인 키스장면으로 승화시켜 성공한 대표적인 드라마다. 하지만 ‘겨울연가’ 이후 드라마에서 키스 장면의 리얼리티를 살려 과감하게 표현하는 걸 보고 한 PD는 “영화 속의 키스와 TV 속의 키스가 어떻게 다른지, 시청자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기까지 했다.

그는 “드라마의 선정성이란 잣대를 어디다 두어야할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며 “브라운관에서 스타들의 키스 연기가 어느 정도 꽃을 피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영화의 테크닉을 쫓다보면 TV 드라마도 말초신경을 자극할 정도로 진한 쪽으로 흘러, 키스 연기를 거부하는 스타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게 그 PD의 우려였다.

TV 드라마처럼 우리 영화 역시 시행착오를 겪으며 영상미학을 발전시켜왔다. 70년대만 해도 배우들의 격정적 키스 장면을 연출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키스 연기를 꺼리는 스타가 많았기 때문이다. 1977년 서울개봉(단성사)때 45만명의 대박을 터뜨린 영화 ‘겨울여자’의 김호선감독이 이색경험이라며 털어놓은 촬영장 에피소드 하나. 80년 초에 김감독은 J영화사 작품 연출을 맡아 주연 여배우, 남자배우와 함께 강릉의 해수욕장으로 떠났다. 모래사장에서 남녀 주인공이 다정하게 걷다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찍기 위해 간 것이다. 낙조를 배경으로 한 데이트 장면 촬영은 손쉽게 끝났다.

잠시 휴식을 취한뒤 “자연스럽게 포옹하다 키스하는 거야”하는 김감독의 주문이 나오자 남녀주인공은 일단 선 자세로 시선을 맞췄다. ‘레디 고’ 하는 외침에 두 배우는 감정에 몰입하며 키스를 나눴다. 하지만 감독은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NG를 냈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표정이 너무 건조해.” 김감독의 질책이 터져나왔다. 다시 감독의 우렁찬 목소리가 해변에 울려퍼지며 카메라가 돌았다. 20여초가 지났을 때다. 여배우가 “으윽…”하고 남자배우의 가슴을 확 밀쳤다. 그러고는 ‘찰싹’하는 소리가 해변에 울려퍼졌다. 여배우가 사정없이 상대의 따귀를 올려붙인 거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더러운 XX.”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카메라를 벗어나 저 멀리 해변으로 달아났다. 감독은 물론이고 스태프가 멍하니 남자배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남자배우도 어이가 없는지 뺨을 만지다 모래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변에 앉아 울고 있는 여배우를 좇아간 감독이 “어떻게 된 거냐”며 달랬다. 그녀는 촬영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울먹였다. 왜 그러냐고 거듭 묻자 “혀를 입에 넣어 장난치는 거예요. 흑흑…”하며 엉엉 소리내어 우는 게 아닌가. 아무리 실감나는 연기를 한다손치더라도 키스장면을 촬영하다 여배우의 혀를 빤다는 건, 80년대 사회 정서로는 용납(?)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여배우가 거칠게 항의하는 바람에 촬영을 접고 말았다. 극장에서 관객들이 본 건 NG필름 중 한 장면이었다.

/신일하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