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무심결에 “난 이랬어”하고 자신이 겪었던 무명시절 일화를 털어놓는데, “그걸 칼럼에 소개해도 될까?”하고 물으면 대부분 정색을 하고 거절한다. 자신들이 체험한 가슴아픈 과거를 모노드라마 연기하듯 신나게 털어놓다가도 글로 쓴다면 금방 농담이었다고 빼는 걸 많이 보았다. 치부를 드러내는 게 싫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순돌 아빠’로 유명한 중견 코믹 탤런트 임현식(57)은 달랐다.

“후배들과 술자리에 어울리면 가끔 제 무명 시절 얘기를 해주지요. ‘난 너희들보다 무명생활을 많이 했어. 무려 15년 넘게 했어. 그런데 내 무명 시절 별명이 뭔지 알아’하고 물으면 아무도 대답을 못해요.”

TV드라마 ‘허준’에서 현란한 애드리브 연기로 ‘감초연기의 달인’이란 극찬을 받고 스타덤에 오른 임현식이지만 무명생활의 남다른 아픔이 있었다. 1969년 12월 MBC TV 탤런트 1기생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그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외모탓에 신인시절 고정 배역 하나 맡는 것조차 힘들었다.

“일이 없어도 방송국에 나와야 하는 게 우리 직업이죠. 탤런트실에 얼굴을 보여야 단역이라도 따낼 수 있어서…. 출근했다 술 한잔하고 들어가는 게 일과였는데, 명색이 선배 체면에 그냥 헤어지기 뭐하면 좋은 데가 있다며 제가 살던 경기도 양주군 송추유원지로 몰고 갔어요.”

그가 살던 70∼80년대 송추는 시골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낙후돼 시내와 물가 차이가 컸다. 그래서 임현식은 접대(?)할 일이 있으면 자신의 동네에 있는 허름한 주막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는 것. 외상도 잘 해줘 무명시절 임현식의 단골 술집이 됐다.

“어느 날 후배 녀석이 카운터에 있는 외상 장부를 훔쳐 본 거예요. 내가 툭하면 계산도 안한 채 ‘아줌마 우리 그냥 가요’하고 나오는 걸 본 그가 호기심이 발동해 그랬다나 봐요. 근데 장부에 ‘임탈용 ○월 ○일 ××만원’하고 여러 장 써놓은 걸 본 것이죠.”

여주인은 그가 임씨 성의 탤런트라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이름을 몰라 생각나는대로 그렇게 써놓았던 것이다. 장부를 몰래 본 후배의 입을 통해 그 이름이 전해져 동기생들의 놀림감이 됐다. 임현식은 “그 아줌마 잘못은 아니죠. 술좌석에서 후배들이 ‘임선배’하고 부르는 것을 듣고 제 성이 임씨인 것은 알았지만 이름을 모르니 아무렇게나 적은 것같다”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고 한다. 하지만 “짓궂은 후배들이 ‘임탈용 선배’하고 부르면 속이 뒤집힐 정도로 괴로운 적이 많았다”고 그는 실토했다.

동네 아저씨같은 털털한 이미지에 농담을 좋아하는 그는 얼마 전 토크프로에서 “내 인생을 바꾼 여자 3명이 있었는데 모두 젖가슴을 주무르는 관계였지. 그건 내 할머니, 어머니, 아내였다”는 재담으로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한데 그 멘트가 편집과정에서 빠져 아쉬움이 크다는 임현식은 “TV에서 스타들의 무명시절 일화를 방송하면 요절복통 히트할 자신이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신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