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요즘 우리 경제를 보면 꼭 그 꼴이라는 느낌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9월24일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금리를 놓고 많은 ‘훈수’들이 오갔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다른 의원들은 금리를 현수준에서 운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의원은 아예 “지금은 오히려 금리를 인하할 때”라는 소신을 폈다.

심포지엄 자리에서라면 모를까, 국감장에서 금리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볼썽 사나운 일이다. 금리는 누가 뭐래도 한은(엄밀히 말하면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일전에 전윤철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이 금리문제를 언급한 것을 놓고 국회의원들이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는데, 이번에는 국회의원 스스로가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이번 국감에서 흘러나온 일부 국회의원들의 ‘믿거나 말거나’식 폭로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부실채권을 매각하면서 1억달러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폭로는 부실채권을 매입한 외국 투자기관의 심각한 반발을 자초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게 국제 금융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해당의원은 면책특권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향후 부실채권 매각작업에 악영향을 준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경제, 아니 우리 국민의 몫이 된다.

‘12월 대통령선거’라는 변수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최근 정치권의 ‘경제 때리기’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기 당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일단 폭로해보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가뜩이나 미국 경제 침체와 미국-이라크전쟁 발발 가능성등 대외 변수 때문에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판국에 정치권까지 나서 각종 의혹을 확대, 재생산한다면 우리 경제가 버텨나갈 재간이 없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실시간으로 국내 소식이 외국에 전달되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소식은 순식간에 국제 금융계에 퍼지게 마련이다. 정부와 재계는 97년말 외환위기이후 경제 환경이나 기업 투명성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입이 마르도록 자랑해왔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들의 ‘희망사항’을 저버린 채 우리 경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이미지를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한 나라 경제는 한번 이미지가 망그러지면 그것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동아시아에서 각국이 외자유치를 위해 살벌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지게 되면 외국 자본이 다른 나라로 발을 돌리게 됨은 물론이다.

얼마전 만난 한 기업인이 우리 경제에 대해 주제넘은 ‘간섭’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향해 내뱉은 푸념 한 마디를 되뇌면 지금도 쓴 웃음이 터져나온다. “‘니들’이 경제를 알아?”

/박학용 경제부 차장 hipark@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