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술을 모아놓은 옛 병서(兵書)인 ‘삼십육계’에는 미인계(美人計)라는 계책이 나온다. 전세가 열세일때 사용하는 패전계로 미모의 여성을 내세워 손쉽게 군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일반상식화된 병법이다. 미인계의 전형으로 꼽히는 은나라 달기는 주나라 문왕이 주왕을 무력화하기 위해 보낸 미녀 첩자였다. 근세에 와서는 1차대전때 독일의 여간첩 마타하리, 2차 세계대전후 맥아더 사령부의 고급장성을 유혹한 일본의 영화배우 하라세츠코, 남로당이 주한 미군 헌병 사령관의 현지처로 활용했던 김수임까지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례가 많다. 요즘은 그런 미인계가 생활주변에 깊숙이 침투해 상업화, 일반화됐으며 심지어 살벌한 데모현장에서는 심지어 ‘립스틱 라인’으로 변형돼 나타나기까지 한다.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특출한 미모와 친근한 매너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북한의 미녀 응원단 280명이 남한 사회에 ‘미인계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들이 가는 경기장은 경기자체 보다는 이들에게 더 관심이 쏠리고 있고 비인기 종목이어도 입장권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하니 가히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들의 인기가 ‘북한 미인들로 구성됐다’는 단순한 성(性)적 호기심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들이 남한 사회에 던지고 있는 문화적 충격과 파장의 이면에는 북한 문화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미녀 응원단의 일거수 일투족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북한 국가를 기립해서 들은 남한 관중들은 거부감 대신 “부드럽고 좋다”고 평하는 여유를 보이고 주부들을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TV 아침 방송에는 북한 여성응원단의 화장법이 프로그램으로 등장할 정도다. ‘잠수함’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대남 침투가 미녀 응원단으로 상징되는 북한 문화가 대신한다고 할까.

북한 미녀들이 남한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면 지난달 25일부터 5박6일동안 평양에서 공연을 벌인 윤도현 밴드는 북한 사회에 ‘남한 미남계’로 불러도 될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중앙TV를 통해 북한 전역에 생중계된 공연을 마친 윤도현 밴드는 서울로 돌아온 후 “자고 나니 스타가 돼있더라”고 할 정도로 북한 젊은 여성뿐만 아니라 주민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윤도현 밴드가 임수경씨 방북이래 가장 큰 문화적 쇼크를 북한사회에 던졌다는 분석도 한다. 요즘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북파 공작원’들의 자리를 ‘북파된’ 윤도현 밴드가 대신해 문화적 충격을 던진 셈이다.

북한 미녀 응원단과 윤도현 밴드가 남북한 서로에게 준 문화적 쇼크는 분단 50년동안 남남으로 살았던 동포들간의 문화적 호기심과 갈증이 그 원천이다. 동·서독의 경우 문화협정 체결에 무려 13년이나 걸렸다. 이념적 갈등에서 문화적 동질성 회복은 그만큼 힘들다. 북한 응원단과 윤도현 밴드는 지난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후 30년만에 남북한 주민들이 직접 스킨십을 통해 문화적 이질감을 허무는 상징적 계기였다. 북측의 미인계와 남측의 미남계가 문화적 거부감을 해제하는 병법이라면 민간차원의 통일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최영범 정치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