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사장 선임이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6월30일 전임 이종덕 사장이 임기만료로 퇴임한 뒤 공석이 된 사장자리를 공모했지만 마감전날인 17일 2명이 지원해 불안감을 자아내다가, 마감날인 18일 오후 10여명이 무더기 지원,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그러나 퇴역군인, 방송국 관계자 등으로 서울 공연문화의 중심인 세종문화회관의 책임자로 눈에 딱 들어오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오른 L, 또 다른 L, K씨 등은 결국 지원서를 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수많은 응모자가 몰릴 것을 예상해 사업계획안발표회, 외부인사 초청 면접 등 다양한 검증절차를 통해 ‘문화계의 히딩크’를 찾으려던 시도는 일단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응모자가 적고, 지원자의 수준도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문화계에서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된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명예를 생명처럼 중하게 여기는 문화계 유력인사들이 자천을 해서 스스로 구설수에 오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사장과 관련한 잡음은 이 전사장의 퇴임을 앞두고 H씨가 후임사장에 내정됐다는 설이 노조에 의해 공식화하면서 표면화했다. H씨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추문에 휘말렸다며 노조가 임용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낸 것이다. 확인결과 H씨는 내정도 돼있지 않았고, 이 소문은 후임사장을 노리는 T씨가 노조에 허위제보해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명박 서울시장과 가까운 사이인 Y씨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등 근거없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에따라 이시장은 세종문화회관 이사회에 모든 것을 맡기고 투명하게 ‘공모’할 것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새로 구성된 세종문화회관 이사회는 수차례에 걸친 마라톤회의 끝에 경영자적 능력과 예술성을 겸비한 인물을 뽑기 위한 내부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을 적용할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은 대극장, 소극장, 전시장을 비롯해 서울 시향, 무용단, 극단, 뮤지컬단 등을 거느리고 있는 수도 서울의 핵심문화기관이다. 특히 강남·북의 문화적 격차 해소를 위한 원동력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의 직급으로는 별로 무게감이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문화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런 자리가 3개월째 공백상태인데다가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 것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부적합한 인물을 뽑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공모기간을 연장하는 한편 자천제를 보완해 능력과 명망을 갖춘 인사를 뽑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는 세종문화회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각 문화기관의 장들이 대거 바뀔텐데 이미 수차례의 예에서 본대로 자천제에 바탕한 현행의 공모제는 투명성의 이점은 갖고 있지만 일견 무책임해 보인다. 문화기관은 시민과 직접 접하는 문화정책과 행정의 가장 중요한 현장중의 하나다. 우리 문화풍토에 맞도록 공모제의 개선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승현 문화부 차장 hyeon@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