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카드 갖고 계세요?”

주말에 찾은 동네 대형할인점. 계산대 여직원이 물었다. 7만원 이상 구매시 C카드를 사용하면 사은품을 준다는 것이다. 평소 사용하던 A카드 대신 지갑을 뒤져 C카드로 물건값을 계산하니 참기름 한통을 준다. 불과 열흘전 이곳에서 B카드의 사은행사 덕에 휴지세박스를 얻었다. 연이은 ‘횡재’다.

신용카드가 주부들의 생활을 바꾼다. “카드 있으면 낭비한다”며 현금구매만 하던 친구 K. 깡보수 알뜰주부인 그는 지난해 말 카드사용 환급을 받기 위해 고심끝에 은행신용카드 하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들여다본 그의 지갑에는 무려 예닐곱장의 카드가 들어 있다. 대형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펼치는 사은품 증정·무이자할부·자동차기름값 할인 등을 위한 카드 석장, 동네 패밀리레스토랑 20%할인이 가능한 여성전용 카드, 대형 놀이공원 입장료 할인용 카드, 자사카드 고객 우대이벤트가 활발한 주변백화점 2곳의 카드 등이다.

사용처마다 관련서비스가 있는 카드를 꼼꼼하게 골라 제시하는 그는 과연 생각처럼 생활비용을 절약하고 있는 걸까? 그의 대답이 재미있다. “그때 그때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는데, 여러장의 카드대금청구서가 날아들 때면 언제 썼더라? 하며 내역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

카드를 만들 때는 자신도, 권유자도 무시했던 카드연회비가 ‘조용히’ 통장에서 빠져나간 흔적을 볼 때도 기분이 약간 씁쓸해진다고 한다. 어쩌다 대금납기마감일을 놓치면 카드사 직원이 전화로 “신용불량자로 등록돼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담담하게’ 말해올 때는 배신감마저 느낀다.

바야흐로 신용카드시대다. 당장 가진 돈이 없어도 매달 돌아오는 아이들의 학원비, 할인점의 대형카트를 가득 채운 생필품, 가을 유행 블라우스의 지불을 가능케 해주는 ‘마술카드’가 우리를 유혹한다. 그만큼 우리 생활은 풍요로워진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최근 신문경제면 기사들은 소득증가율을 웃도는 가계부채증가율과 저소득층의 과소비경향 심화, 20대의 무절제한 카드발급과 사용의 문제점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홍대앞 놀이터에서 소박한 생활예술품과 보통사람들의 쓰다만 물건을 사고파는 일요장터인 희망시장을 기획운영하는 조윤석씨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희망시장의 종착지를 “소비사회를 극복하는 것”이라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40년전 입던 빨간색 라코스떼 티셔츠가 아직도 얼마나 생생한지를 설명하며 “규모의 경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가 말한 ‘규모의 경제’는 어떤 것일까. 남이 산다고 사지 않고, 유행이 지났다고 쉽게 버리지 않는 것. 값을 떠나 취향이 반영된 자기다운 물건을 사는 것. 변함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 하나의 물건을 사는 데도 자신의 삶의 가치관을 담는 것. 그런 것이리라. 친구와 나의 지갑을 채운 신용카드들도 이런 기반 위에서 사용될 때 진정한 ‘소비사회의 꽃’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형숙 주말판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