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개막되기 얼마전이다. 왕년에 한국축구를 대표했던 몇몇 축구인들과 우연히 함께 자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한국대표팀의 골키퍼 이운재와 김병지의 선발 출전을 놓고 설왕설래하던터라 자연스럽게 골키퍼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었다. 그러자 이야기는 왕년에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로 명성을 날렸던 모 인사에 대한 회고로 이어졌다.

당시 그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한 인사는 “그때 어느 선수든 XXX에게 찍히면 그라운드에서 살아 남지 못했다. 나도 한번 당했는데 그대로 병원행이었다. 그뒤로는 그 친구가 골대에 서 있으면 겁부터 나 문전 앞에서 제대로 헤딩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 유명한 골키퍼의 특기는 상대 스트라이커가 헤딩을 하려 점프를 하거나 대쉬해 들어올때 일차적으로 상대의 얼굴을 펀칭(?)하거나 같이 점프하면서 무릎을 곧추세워 중요한 부위(?)를 한번씩 걷어 차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와 한번쯤 골문 앞에서 부딪혀 본 공격수들은 다시는 그에게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이탈리아 축구를 대변하는 것이 ‘빗장수비’다. 마치 골문에 자물통(카테나치오)을 잠궈 놓은듯 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 수비 전술로 이탈리아는 세계축구의 정상으로 군림해왔다. 왠만한 팀들은 이탈이아의 ‘빗장수비’앞에 지레 주눅들어 공격다운 공격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물러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자는 18일 한국과 이탈리아간의 경기를 통해 이탈리아 축구를 대변하는 ‘빗장수비’의 비결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앞서 말한 왕년의 아시아 최고 골키퍼가 상대 선수에 대한 기선제압용으로 간혹 사용했다던 비기(秘技)와 같은 것이었다.

이날 ‘아쭈(?)리 군단’은 공중볼을 다투기위해 점프를 할때마다 팔꿈치로 한국선수들을 가격하며 튀어 올랐다. 그들의 비기는 팔꿈치 가격만이 아니었다. 유니폼 잡아끌기, 축구화 바닥을 드러낸채로 들어오는 태클 등 실로 다양했다. 이들의 ‘변형 빗장 수법’에 김태영은 코뼈가 무너졌고,모 회사가 최첨단 소재라고 자랑했던 한국 선수들의 유니폼은 찢겨 나갔다. 그날 경기를 통해서 본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는 분명 ‘폭력’과 ‘교묘한 파울’에 다름없었다.

히딩크 감독도 이탈리아 팀에 대해 “전술적으로 매우 영리하고 교활한 팀이다. 한마디로 ‘좋은 경기’를 하려는 팀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싸우는 팀이다”라고 평했던 것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박광재기자 kj59@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