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은 계속해서 말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그 화제에 관해 알건 모르건 관계없이….” 이것은 ‘영어사전’의 편자 사뮤엘 존슨의 말이다. 사실, 수다스럽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단연 으뜸이다. 그들은 아이스크림을 빨면서도 중얼거리지만 프랑스 사람들도 뒤지지 않는다.

처마를 맛대고 있는 파리의 거리 풍경은 그들의 다변과 관계가 없지 않다. 말이 많기는 그 지식인들도 꼭 같다. 프랑스 풍의 지성 즉 에스프리란 살롱이나 카페의 대화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자기의 자서전에 ‘말’이라는 제목을 단 사르트르도 말의 달인이었다. 그의 한 친구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그와의 대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혼자서 쉴새없이 말한다. 이쪽에는 말할 틈도 주지않고, 한숨 돌릴 사이도 없다. 말이 바로 분류가 돼 방출된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사르트르가 말하면서 자기의 말을 노트에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놀란다. 이번 회에서는 사르트르가 단골이던 파리의 카페 ‘뒤 마고’와 ‘플로르’를 찾아가보자.

‘두개의 중국 인형’을 뜻하는 ‘뒤 마고(Les Deux Magots)’라는 상호는 카페 내부의 기둥 하단에 자리한 두개의 중국인 상(像)에서 유래된다. 유럽의 옛 카페나 명차(銘茶) 전문점 간판에서는 그로테스크한 혹은 유머러스한 중국인 상을 종종 볼 수 있다. 차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고사(故事)에 경의를 표해서이다. 그러나‘뒤 마고’의 경우는 실크의 원산지 중국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이 카페가 자리잡은 건물이 원래 실크를 취급한 점포였기 때문이다.

‘뒤 마고’가 1875년에 문을 연 생 제르망 데 프레 지역은 고티에, 조르주 상드, 발자크, 졸라 등이 자주 출몰해 일찍부터 몽마르트와 더불어 파리 문화를 상징하는 지적 패션의 중심지였다.

오늘날에도 ‘뒤 마고’의 메뉴판에는 ‘지적 엘리트가 모이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상징파 시인 베를렌, 말라르메, 랭보가 숭배자들에게 둘러싸여 담론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시성(詩聖)들에 이어 초현실주의 예술가들도 단골이었으며 1920∼30년대에는 발레리, 릴케, 장 콕토, 에즈라 파운드, 그리고 피카소도 이곳을 ‘제집처럼’ 출입했다.

파시즘의 태동을 규탄해 1935년 앙드레 말로, 아라공 등 좌파 작가들이 앞장 서서 범유럽적 규모의 ‘문화옹호 반파시스트 문학자 회의’를 개최한 곳도 ‘뒤 마고’였다. 이 회의에 참가한 앙드레 지드, 헉슬리, 에렌부르크, 파스테르나크, 하인리히 만, 브레히트, 제거스, 베허 등 독일의 망명 작가들도 ‘뒤 마고’의 단골이 됐다.

파리가 해방되었을 때 사람들은 독일 점령군 하에서 잊었던 말을 되찾았다. 그리고 ‘저마다의’ 단골 카페로 몰려가 서로 말을 나누었을 때 비로소 해방을 진실로 실감할 수 있었다. 점령군 치하에서도 파리의 카페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 어쩌다 ‘뒤 마고’나 ‘플로르’의 명성을 알고 있는 독일 장교들이 들어오면 그 순간 ‘굴복하지 않는 정신들’이 침묵으로 적의를 나타냈다. 그러면 그들은 장화 소리를 죽이며 사라져버렸다.

사르트르는 1944년 파리가 해방되기 전부터 ‘뒤 마고’에서 원고를 썼다. 그리고 얼마 뒤부터는 ‘플로르’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 ‘플로르(Cafe de Flore)’는 꽃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 플로르의 이름 그대로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사상의 꽃을 화려하고 풍요롭게 피웠다. 그 창시자의 손자가 되는 작가 두랑-부발은 저서 ‘카페 드 플로르’에서 “신성하다고 할 감동없이는 이 ‘무거운’ 장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왜냐하면 그곳에는 신화적인 인물들뿐만 아니라 이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세기를 만든, 지금은 실체는 없어졌더라도 그러나 실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우(女優) 시몬 시뇨레는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내가 삶을 받은 것은, 아니 그보다도 오히려 오늘에 있는 나로 말하면 1941년 3월의 어느날 밤 파리 6구(區) 생 제르망 데 프레 거리의 카페 ‘플로르’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카페 ‘플로르’에도 세기를 창조한 작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아폴리네르, 생텍쥐페리, 화가 드랭, 조각가 자코메티 등. 그 ‘신비적 참가자’ 반열에는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롤랑 바르트, 그리고 이란의 소라야 왕비, 안남(베트남)의 옛 황제 바오 다이 1세, 대통령이 되기 전의 미테랑도 끼였다. 미래의 샹송 여왕 에디트 피아프가 꽃파는 소녀로서 귀여움을 뿌린 곳도 ‘플로르’였다.

이제 사르트르로 화제를 옮겨보도록 하자. 당시 카페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1942년께 문을 열면 정오까지, 그리고 오후부터 폐점 때까지 ‘플로르’에 찾아오는 신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 여성과 자주 왔습니다… 그가 누군지 오랫동안 나는 몰랐습니다. 두 사람은 오후에는 2층에 자리를 옮겨 언제나 큰 자료를 펼치고 쉴새없이 글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몇달 동안이나 그들의 성함을 몰랐습니다. 어느날 사르트르씨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까지. 그 뒤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습니다.”

지적 젊은이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기 직전, 카페에서 글을 쓰고 사르트르 현상이라는 ‘신화’를 엮어내고 있던 사르트르. ‘자주 함께 온 여성’이란 물론 사르트르의 생애의 동반자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가 될 뿐이다”라는 유명한 머리말로 시작되는 ‘제2의 성’의 저자 보부아르이다.

사르트르는 카페에서 여성들에게 하루 10통 이상의 편지를 썼다고 하는데 소설, 희곡과 더불어 철학 저술까지도 ‘플로르’에서 썼다.

722쪽에 이르는 대저 ‘존재와 무’도 1942년부터 1943년의 겨울에 걸쳐서 카페 ‘플로르’에서 썼다. 오렌지 색 인조 모피 코트에 몸을 감싸고 밀크티를 한 잔 마시고는 4시간 동안 원고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오직 쓰는 데만 몰두하는 그의 모습을 보부아르는 ‘모피와 잉크의 작은 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서양사학자 이광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