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그녀가 이유도 없이 만나러 오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장화가 찢어지면 카페로 가자/월급이 400크로네인데 500크로네를 쓴다면 카페로 가자/바르고 얌전하게 살고 있는데 자기를 용서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좋은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언제나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카페로 가자/사람을 경멸하는데 사람이 없으면 견디지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이제 어디서도 외상 안 해주면 카페로 가자.”(알텐베르크)

음악의 도시 빈은 카페의 도시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 문화는 19세기 말 전후에 그 절정에 달했다. 유럽 카페의 역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플로리안’이나 프랑스 파리 ‘프로코프’가 대표하는 제1세대에 이어 19세기말 전후가 제2세대이며, 이 시대의 전형적인 카페로서 ‘첸트랄(Central)’을 들 수 있다.

원래 19세기 중엽 빈의 대표적인 카페는 ‘그린슈타이들(Griensteidl)’이었다. 1847년에 ‘헤렌갓세(‘귀족골목’이란 뜻)’ 1번지 어느 남작 소유의 건물에 문을 연 그린슈타이들에는 알텐베르크, 헤르만 발, 슈니츨러, 호프만슈탈 등 세기말의 빈 문학을 대표하는 ‘청춘 빈파(派)’가 단골로 출입했다. 그러다가 1897년 빈의 도시 개혁에 의해 그린슈타이들은 헐리게 됐다. 이때 카를 크라우스는 ‘헐리고 해체되는 문학’이란 추도문을 썼다. 그는 카페의 철거를 문학의 붕괴로 슬퍼한 것이다. 젊은 문인들은 곧 그들의 새 둥지를 찾았다. 카페 첸트랄이다.

1868년 그린슈타이들 가까이에 문을 연 첸트랄에는 ‘청춘 빈파’와 더불어 슈테판 츠바이크, 웰페르, 웨디킨트 등 작가들과 화가 코코슈카, 부르크 극장의 배우들이 단골이 됐으며 프로이트도 토요일마다 모습을 나타냈다. 카페의 단골들은 대부분 “혼자 있기를 바라면서도 그 때문에 동료를 필요로 하고, 인간에 적의를 품으면서도 격하게 사람을 찾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거기에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만이 이 기묘한 카페의 가장 고유한 매력을 공유한다”는 글이 남아 있기도 하다.

세기말 빈의 카페맨 중의 카페맨은 방랑작가인 페터 알텐베르크였다. 그는 ‘눈을 뜬’ 동안에는 언제나 첸트랄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의 주소를 ‘빈 1구(區) 카페 첸트랄’이라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그에 대해 어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의 한복판에서도 그의 눈에는 산골짜기부터의 일출(日出)과 빛나는 바다가 보였다. …그의 감성은 습관이나 관례에는 아랑곳없고 세상을 눈치보지 않았다. 극단적이 되더라도 결코 정신의 빛을 잃는 일이 없었다. …그는 절대로 그 자신이기 위해 살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고 해방시켰다. 그리고 타인에게 힘을 주었다.”

이 구절 속에서 우리는 이상적 카페맨의 참모습을 본다. ‘빈의 소크라테스’로 불린 알텐베르크에게는 많은 에피소드가 붙어 다녔다. 그 중에 그가 직접 들려주는 한 토막 이야기.

“나의 한달치 집세, 15크로네를 물어준 어느 사나이가 ‘페터, 자네들 단골 테이블에 오늘밤 내 애인을 데려가도 좋은가. 자네들과 어울려 시야를 넓혔으면 하네’라고 했다. ‘시야를 넓힌다고? 15크로네로는 어림도 없지. 아무리 값싸더라도 월 25크로네는 되어야지. 15크로네로는 그녀는 그대로 멍청이일세’.”

빈 카페에는 보통 당구대가 4∼5대 놓여 있고 포커놀이에 열중하는 손님이 많은 것도 독특한 풍경이다. 첸트랄의 당구대에는 프로이트나 이민자로 가장한 망명중의 트로츠키가 자주 모습을 나타냈다. 특히 문학 카페의 조건 중 하나는 신문, 잡지를 구비하는 것이었다. 첸트랄에는 22개국 251종의 신문이 갖추어졌다. 명물 급사장인 ‘장’은 단골들에게 날마다 애독지를 착오없이 배분했다고 전해온다.

‘고독의 자오선’, ‘대도시의 태내의 시골집’이라고 불린 카페 첸트랄에는 말러, 쇤베르크 등의 음악가, 건축가인 바그너와 로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자주 나타났다. 우리들은 카페 첸트랄이라는 만화경을 통해 세기말 빈의 그 다채롭고 찬란한 문학과 예술 및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반유대주의자들과 함께 시오니스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더불어 국수주의자들이 열띤 담론을 벌였던 첸트랄(좌절한 그림쟁이 히틀러도 종종 나타났다)은 암울한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바람개비이기도 했다.

빈에는 ‘첸트랄’ 이외에도 ‘헤렌호프’, ‘무제움’, ‘임페리얼’, ‘슈페를’, ‘모차르트’ 등 고전적인 명문 카페가 많다. 이들 카페가 꽃피운 카페문화는 단골이던 작가·예술가·사상가들의 작품과 똑같이 세기말 빈의 작품이다.

슈니츨러와 호프만슈탈, 말러와 클림트의 작품을 다채롭게 아로새긴 멜랑콜리와 에로스, 그리고 죽음이 신비스럽게 교차된 음색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800년 수도 빈이 그 황혼길에서 마지막으로 하늘을 가득히 물들인 찬란한 광망(光芒)이 아니었던가.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역사가였던 첸트랄의 단골 에곤 프리델은 1938년 나치스에 의해 가택 수색을 당했을 때 2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바로 빈 카페 문화의 죽음을 상징하였으니 첸트랄도 마침내 1940년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첸트랄은 히틀러 제3제국의 종말과 더불어 소생했다. 시민들은 다시 문을 연 오페라극장과 더불어 카페에서 해방을 실감했다. 정문 위에 나부끼는 카페의 깃발, 내부에 들어서면, 신문을 쥔 손을 무릎에 댄 아르텐베르크(납인형)가 친구들을 대하듯, 지금도 멜랑콜릭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맞아준다.

<서양사학자 이광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