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그처럼 말이 많고 기분 좋게 이야기를 즐긴 적이 없었다.

정신의 빛나는 출현, 그 명예의 한 부분은 의심의 여지없이 시대적 행운의 혁명, 새 풍속을 만들고 사람들의 기풍을 바꾼 큰 사실, 즉 커피의 유행에 돌려야 할 것이다.”

19세기 역사가 미슐레의 ‘프랑스사’ 중 한 구절이다. 이 커피 예찬자는 커피의 유행이 프랑스인의 심성과 풍속을 새로이 창출했다고 찬탄하며 그것을 ‘행운의 혁명’으로 비유했다. 이때 미슐레는 파리 거리거리에 늘어선 수많은 카페를 연상했을 것이다.

카페, 프랑스적 너무나 프랑스적인

나라마다 저마다의 상징적인 ‘쉼터’를 갖고 있다. 영국의 ‘펍’, 독일의 ‘비어카르텐’, 이탈리아의 ‘카페테리아’, 아메리카의 ‘스낵 바’, 그리고 프랑스의 ‘카페’가 그것이다. 그런데 카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있어 단순한 쉼터가 아니다. 파리와 파리지엔의 이미지로 우리들은 무엇보다 카페를 떠올리게 된다. 카페를 잘 들여다보면 프랑스와 프랑스인이 보인다. 프랑스적 에스프리와 그 정체성의 산실, 카페는 분명 빛나는 ‘문화의 토포스’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라신의 작품과 더불어 유행에서 벗어난 것입니다”라고 17세기 살롱의 귀부인이며 여류 작가이던 세비녜 부인은 볼테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적 여인의 예언은 적중하지 못했다. 라신의 작품은 프랑스 문학 최고의 고전으로서 면면히 읽히고 커피 또한 포도주와 더불어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기호품이 아니던가.

1669년 루이 14세를 알현한 터키 특사가 오리엔트풍의 호사스러운 카페를 파리에 마련했다. 그곳에서 귀족들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장면들을 상상하며 리퀴르(Liqueur·술)와 함께 그 엑조틱한 ‘검은 물’을 즐겼다. 한편 커피에 맛들이기 시작한 일반 민중들은 선술집과 흡사한 터키풍의 초라하고 엉성한 뒷골목 커피집에 출입했다. ‘흠뻑 젖은 발’이라고 불리는 포장마차 카페가 생겨났는가 하면, 골목에서는 “커피 한잔 하세요 커피 한잔 하세요”를 외치며 지나가는 커피 행상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카페 ‘프로코프’와 멋쟁이 단골들

최초의 프랑스풍 카페는 소르본대학이 있는 지식인의 거리 라텡구(區)에 생겨난 카페 ‘프로코프(Procope)’다. 1686년에 문을 연 이탈리아계 주인은 ‘어딘지 수상쩍은 욕탕 시설’을 개조, 신식 난방 시설을 설치했는가 하면 벽 한면 가득 메운 큰 거울, 크리스털 샹들리에, 대리석 테이블, 의자와 소파 등 고급 가구들로 실내를 우아한 분위기로 꾸몄다.

손님은 대체로 지적인 시민들이었으며, 귀족들은 1789년 혁명 이전에는 살롱에서 커피를 즐겼다. 프로코프의 단골손님이었던 볼테르는 한 사나이를 평하며 “그는 극장과 프로코프에 출입하는 것으로 자신을 상당한 인물로 여긴다”고 비꼰 적도 있었다.

베네치아와 밀라노를 제치고 파리가 유럽 제일의 모드와 패션의 도시로 부상한 그 무렵, 철학서를 읽고 극장과 카페에 출입하는 것은 바로 ‘좋은 취미’를 갖춘 교양인의 필수적 덕목이었다. 카페에는 더욱이 시대의 우상인 배우들과 철학자들이 삼삼오오 진을 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극장에 가듯이 기대와 흥분, 그리고 자부심을 갖고 카페로 향했다.

초창기 프로코프의 단골은 남녀 배우들과 극장 관객들이었다. 이 카페의 맞은 편에 ‘코미디 프랑세즈’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제의 중심은 당연히 연극과 오페라에 모아졌다. ‘코미디 프랑세즈’가 다른 장소로 이사한 이후, 프로코프의 단골은 자유롭고 예술적인 분위기에 끌려 모여든 시인·문인·철학자들로 바뀌었다. 이 중에는 볼테르, 몽테스키외, 디드로, 달랑베르, 돌바크 등 철학자들과 함께 시인 라퐁텐, 퐁트넬, 극작가 보마르셰, 독일의 비평가 그림 남작 등이 있었다.

이곳에서 담론의 중심은 문학이었다. 이 거리의 살롱에서도 시가 낭독되고 신작 비평이 좌중을 뜨겁게 했던 것이다. 프로코프가 ‘문학 카페’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장황한 문학 담론을 경원해 4륜마차를 몰고온 상류층의 부인들이 도망치는 경우도 많았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되던 날, 원작자인 보마르셰는 프로코프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작품으로 인해 경찰이 카페에 들이닥쳐 끌려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살롱의 귀부인들처럼 카페 주인중에도 ‘재녀(才女)’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여성인 마담 큐레는 죽은 남편의 뒤를 이어 카페를 40년이나 경영하였다. 몽마르트르에 있는 마담 큐레의 카페에는 많은 문인이 출입했으며, 그녀도 시를 썼다. 마담 큐레는 시집 ‘카페 주인의 뮤즈’를 통해 커피 애호가인 프리드리히 대왕에 바치는 송가(頌歌)를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시집을 읽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자그마한 금상자를 그녀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볼테르도 포도주잔을 선물했고, 라퐁텐은 자신의 전집을 증정했다. 한편 그림 남작은 마담 큐레를 ‘시에 혼을 뺏긴 카페 여주인’으로 부르면서도, 좋은 작품은 아마도 여주인의 미모에 홀린 카페 단골 중의 누군가가 써서 주었으리라고 혼자 추측하기도 했다.

카페 프로코프의 손님들은 ‘여름에는 상쾌하게, 겨울에는 따뜻이 해주는’ 커피와 더불어 홍차와 초콜릿 그리고 이탈리아인 주인이 만들어주는 아이스크림을 즐겼다. 당시 카페에서는 대부분 금연이었다.

프로코프가 처음으로 문을 연 뒤 파리에는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1716년에는 약 300점(店), 1788년에 이르면 약 1800점을 헤아렸다. 카페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토록 유인하고 매료시켰을까. 정체불명의 이 이방의 ‘빨간 열매’에 흠칫흠칫 망설이면서도 가까이 한 것은 처음에는 커피가 몸에 좋다는 의사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당시 커피(콩)는 약국에서 취급되고 약국들은 모두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수녀들이 수녀원의 어려운 살림에 보태고자 사람들의 입방아에 신경을 쓰면서도 수도원 앞 거리에 나와 커피를 팔았다는 기록이다.몸에 좋고 맛이 좋아 커피와 카페가 그토록 사람들을 끌어들였을까. 카페에서 생애를 보내기를 바랐던 몽테스키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하루 종일 낮과 밤을 이어가면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더불어 앉아 있을 수 있음은 무엇보다도 카페의 특권이다. 카페야말로 거기에 앉아 있으면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현실성을 더하고, 웅대한 계획이나 유토피아적 몽상, 아나키즘적인 모반(謀叛)이 생겨나는 유일한 장소다.”

다음 회에서는 우리를 유혹하는 카페의 참모습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서양사학자 이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