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작품에 ‘커피 칸타타’가 있다.

커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딸에게 “멋진 드레스를 사서 줄게, 좋은 신랑을 구해 줄게”하며 못마시게 하고자 하는 부친에 대해 딸이 노래하는 아리아의 한 구절.

“천(千)의 키스보다도 달콤하고 / 메스컷 와인보다도 부드러운 커피 / 커피가 없으면 안돼 / 나를 예뻐하거든 / 아 커피를 가져다 주렴.”

이 작품이 만들어진 1732년경 커피는 유럽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기호품이 된듯하다.

'술취한 유럽' 깨운 '동양의 향기'

유럽에 있어 커피는 17세기에 이르기까지도 동방 여행기에 소개되는 이방의 엑조틱한 진품(珍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중엽에 변화가 나타났다. 차·초콜릿·설탕·담배와 더불어 기호품으로서 부상한 것이다.

커피는 제일 먼저 동방 무역의 중심지인 베네치아와 마르세유에 상륙하였다. 이어서 교역의 새 중계지 암스테르담과 런던에 모습을 나타냈고 이후 유럽 모든 도시에 선보였으며, 18세기 초에는 일반 시민의 일상적 음료가 되었다. 이렇듯 이국의 값비싼 수입품이 놀랄만큼 급속도로 보급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대규모의 커피 교역이다. 커피는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상품이었다. 지난날 베네치아가 후추 무역으로서 영국을 능가할 만한 부(富)를 쌓아 올렸음을 알고 있었던 유럽 대상인들은 신기호품에 야심을 불태웠다. 그 엄청난 교역량에 터키 정부는 한때 기독교권에 대한 커피 수출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1610년 유럽에 최초로 커피를 수입한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식민지 인도네시아에서 커피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고 들어온 커피, 그 신상품의 매출을 위해 다음과 같은 ‘커피 미덕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머리와 마음을 맑게 한다. 간과 담을 강화한다. 위에 좋고 혈액을 깨끗하게 한다. 식욕을 자극 혹은 억제한다. 수면을 촉진 혹은 억제한다.” 어느 시대이건 미지의 음식품이 선보일 때에는 먼저 그것이 얼마나 몸에 좋은가가 요란스럽게 광고되는 법, 커피도 맨처음엔 ‘자양물’로 선전되었다. 그 모순된 미덕을 부추긴데에는 당연히 의사들이 동원되었다. 반대론의 초점은 커피가 ‘남성 불능’을 초래한다는 점에 모아졌으며, 그 이슈는 주부들에 의해 일어났다.

귀족의 패션, 커피!

값비싼 수입품 커피는 우선 궁정과 귀족 그리고 상층 부르주아들에 의해서 사치스러운 기호 문화의 패션이 되었다. 16세기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상류사회는 중세의 남성적인 기사 문화에 대신하여 우아함을 지향하는 여성 중심의 사교 문화를 꽃피웠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새로운 기호 문화를 낳았으니 후추에 대신하여 커피, 차, 초콜릿과 과자가 식탁을 장식하였다. 때마침 나타난 미각의 큰 변화와도 관련돼 자못 흥미롭다.

초콜릿(및 코코아)에 관해 말하면 그 원료는 ‘신의 음식물’을 뜻하는 카카오(콩)이다. 그 원산지는 남미로서 멕시코 고원 다스텍족(族)의 황제가 초콜릿을 황금의 잔으로 하루 50잔을 마시는 것을 본 스페인인이 16세기 초에 카카오 콩을 고국에 가져왔다. 초콜릿은 처음에는 왕실의 비장품이었으나 17세기 초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전해지고 차차 전 유럽 귀족들의 기호품이 되었다. 오늘날의 고형 초콜릿이 만들어진 것은 1840년경 영국에서였다.

쓰면서도 시큼하고, 달면서도 감칠맛나는 커피, 그 맛에서 귀족들은 먼 동경의 땅 오리엔트의 훈풍을 감지하였다. 커피는 차와 함께 그들의 신분과 교양을 장식하고 연출하는 풍아(風雅)한 소도구가 되었다. 그들은 커피·차·초콜릿·설탕을 주방에 쌓아놓고, 아프리카 무어족 흑인 소년을 시중케 하고 터키풍의 의상을 걸치고 중국의 도자기 잔으로 커피를 즐겼다. 귀족들에 있어 중요한 것은 커피가 아니라 자기 연출을 위한 커피가 놓인 방이요, 사교의 멋진 커피 타임이었다.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여류 문인 세비녜 부인은 동 시대의 극작가 장 바티스트 라신을 평한 글에서 “라신은 커피처럼 유행으로부터 벗어난다”라고 말했다. 유행처럼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커피는 분명히 애초 귀족들에 있어 패션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시민 이데올로기의 ‘깨달음의’ 문화!

오늘날 코카콜라가 잘 말하여 주듯이 음료는 때로 한 시대 한 문명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앞에서 우리들은 차와 더불어 커피가 술에 빠져 휘청거린 유럽을 소생시켰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깨달음의’음료는 무엇보다도 노동하고 머리를 쓰는 시민계급과 지식인의 음료였다. 다음의 시는 1674년에 쓰인 영국의 청교주의적인 커피 찬가이다.

“악의에 찬 포도주가 / 세계를 더럽히고 / 우리의 이성과 영혼을 더불어

거품이 일어나는 술잔에 빠뜰게 하였다. / … 그 때 신은 우리에게

고마운 나무 열매를 보내 주셨다. / 커피가 우리들에게 왔다.

이 고마운 만능의 음료 / 위에 좋고 정신을 활발케 하고

기억력을 강화하고 슬픈 자를 쾌활하게

오만해 하는 일도 없고 삶의 의지를 눈뜨게 한다.”

프랑스의 역사가 미슐레는 “(커피)혁명의 열광은 새 풍속을 창출하고 사람들의 기풍을 바꾸게 하니 루이 14세 치하의 살롱과 선술집을 대신하여 카페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근대문화는 카페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 어찌 프랑스뿐일까. 프랑스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 독일, 러시아에서도 카페가 생겨났다. 만인에게 열린 거리의 사교장 카페. 다음회에는 카페 및 커피 하우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차 문화와 그것이 만들어 낸 유럽의 풍속도를 그려보도록 하겠다.

<이광주·서양사학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