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서울시가 백기를 든 모양이다. 서울시가 그간의 고압적인 전용구장 건립 불가 방침을 철회하고 제3의 장소에 6만5천석 규모의 축구 전용구장을 짓겠다고 하면서도, 끝내 뚝섬의 돔구장을 월드컵 축구대회 때 연습구장이나 예선전 장소로 쓰겠다는 의도를 고수한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축구 전용구장 건립은, 뚝섬의 그 돔구장이 이제 완전히 월드컵과 무관한 존재가 되었음을 뜻한다.

LG그룹이 뚝섬의 사유지를 주변시세의 3분의1 가격에 불하받은 과정도 의심스럽지만, 서울시가 자꾸 월드컵대회를 그 돔구장과 결부시키려는 의도는 돔구장에 이르는 진입로 공사비 1천7백억원을 LG그룹을 위한 특혜로 그대로 지출하려는 데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야구장으로 쓰일 사기업의 시설을 위해, 서울 시민의 세금이 전용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그 돈이면 정부의 보조금을 합쳐 축구전용구장을 충분히 세울 수 있는 거액이 아닌가.

나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집요한 뚝섬 돔구장 감싸기 행적을 보면서, 뭔가 석연치않은 조짐을 읽는다. 도대체 야구장이 월드컵대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서울에서 월드컵대회가 열릴 때, 연습구장은 기존의 동대문과 목동운동장의 잔디만 잘 관리해도 충당할 수 있다. 잠실운동장도, 조명과 음향시설만 개·보수하면 예선전 치르는 데는 그다지 지장이 없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자꾸 야구장이 될 뚝섬 돔구장을 끼워넣으려고 서울시는 애를 쓰는가.

여기에는 필시 LG그룹과 서울시 간의 담합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이를 규명하는 일은 서울시 의회와 사정당국이 할 일이고 우선 축구협회는 월드컵 조직위원회와 협력하여 뚝섬에 세운다는 돔구장이 월드컵대회와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해야 한다. 공연히 불미스런 사안에 축구협회가 들러리를 서거나 핑계거리를 제공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아무래도 이번 결정이 서울시측의 시간벌기 작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용구장 건설에 비관적 전망을 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우선 부지 선정부터가 쉽지 않다. 서울시의 공청회, 서울시 의회 통과만 해도 족히 1년은 끌게 될 사안이고, 부지 선정이 확정돼야 설계에 들어갈 수 있는데 설계만 해도 6개월 이상 걸린다. 여기에 최대의 난관인 자금 동원 계획에 이르면, 서울시와 정부, 조직위와 축구협회의 입장이 상충하여 실로 막막해질 뿐이다. 서울시에서야 시유지를 제공한 것으로 충분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할 게 뻔하고 정부에서는 애초 서울시가 1천억원 내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다그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서울시와 LG그룹은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다며 뚝섬 돔구장의 진입로부터 뚫어버릴 것이다.

그 다음엔 어찌될 것인가. 정부는 여론을 핑계로 시간이 없으니 그냥 잠실운동장 개·보수해서 개막전을 치르고 야구장이건 뭐건 일단은 완성된 돔구장이니까 예선전 및 게임을 돔구장에서 개최하는 길밖엔 없다고 조직위를 압박할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설계에 착수하더라도, 완공되어 잔디가 뿌리를 내리려면 5년은 족히 걸린다. 부지 선정도 안된 마당에 벌써부터 서울 상암동입네, 방이동입네 하고 꿈에 들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없는가. 괴롭지만 뚝섬 돔구장을 물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내놓겠다는 1천억원은 분명 그 뚝섬 부지 매각 대금일 것이다. 우선 이것부터 확실히 공탁해 놓고, 뚝섬 돔구장이 월드컵과는 아무 상관없는 시설임을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민에게 공표하고 진입로 관련 예산 1천7백억원을 집행할 수 없게한 다음, 그 자금의 일부를 전용구장 건설비로 돌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돔구장 진입로 비용을 LG그룹이 부담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부족액에 대해서는 축구협회와 프로 구단이 성금을 모아 내고 정부 지원도 명분에 걸맞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축구팬임을 자처하는 시민들의 성금 행렬이 뒤따르게 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뚝섬 돔구장이 월드컵을 핑계로 지어지지 못하게 확실한 선을 긋는 것이다.
(신동일 : 신일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