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산업부 차장

요즘 너도나도 ‘삼성전자 위기론’을 이야기한다. 재계와 학계는 물론 국내 언론과 해외 언론에서도 연일 위기론을 읊어대면서 이것저것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모습이다. 많은 국민도 국민주인 삼성전자 주가 하락을 우려하고 있어 정부가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삼성 입장에선 듣기 싫겠지만, 좋게 보면 국내 산업을 지탱하는 삼성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다.

삼성 위기론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이 삼성이 과거와 달라졌다고들 말한다. 전 직원이 똘똘 뭉쳐서 위기를 극복해냈던 ‘삼성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삼성 정신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고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도움이 되지 않는 ‘라떼론’으로 보인다. 더 이상 시간과 열정을 갈아 넣어서 초격차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배고픈 시대에나 존재했던 ‘우리’ ‘회사’ ‘조국’ 등을 위해 일하는 ‘가장’ ‘조직원’ ‘민족’은 사라졌다. 대부분 ‘내’가 먼저다. 풍요로운 시대 혁신은 공정한 보상과 평가와 같은 시스템에서 나온다.

글로벌 기업들은 철저한 성과 보상으로 혁신해왔다. 구글, 애플 등 미국의 대기업들은 철저하게 ‘개인 성과’에 기반한 성과급 제도를 운영한다. 직원 인사고과에 따라 현금과 주식 등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구글은 직원 성과급이 최대 수십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성과를 내지 못하면 냉정하게 해고한다. 구글은 올해 1월 역대 최대 규모인 1만2000명을 해고했다. ‘애플카’ 프로젝트를 중단한 애플도 600명의 엔지니어를 내보냈고, 최근에도 디지털 서비스 부문 인력 100여 명을 정리하는 등 올해 총 4차례에 걸쳐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퀄컴도 지난해 1250명가량의 엔지니어를 감축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이들 글로벌 기업이 혁신과 성과를 내는 이유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물론 국내 기업에선 이러한 철저한 성과 보상 시스템이 불가능하다. 제조업 시대에 만들어진 일률적인 근로시간에 맞춰진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의 벽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연공서열 타파, 직급별 승진 연한을 폐지하는 등의 인사제도 도입을 발표했지만, 임원을 제외하면 여전히 직급에 따른 유사한 보수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직급별 상한제가 있어 개인이 성과를 내도 장기적으론 보수가 대체로 비슷해진다. 혁신을 이뤄내도 근무시간만 채우는 직원들과 보수에 큰 차이가 없다면 과연 누가 혁신에 나설 수 있을까. 노조 또한 리스크다. 삼성전자노조는 지난해 수조 원의 적자에서 벗어나자마자 올해 성과급 일괄 인상을 요구하면서 사상 처음 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위기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 산업 전반의 문제다. 정부가 노동개혁으로 추진해왔던 직무·성과 중심 보상체계와 탄력적인 근로시간제도 개편은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로 흐지부지됐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시대를 맞아 최소한 해외 기업들과 공정하게 겨룰 수 있는 기반부터 필요하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존 법·제도·관행이 유지되면 위기의 기업은 앞으로도 속출하게 돼 국가 경제 위기로 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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