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문화부 차장

국정감사(國政監査). 국회가 국정 전반에 대해 진행하는 감사로, ‘국감’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 제도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매년 진행됐고, 유신 때 잠시 폐지됐다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부활했다.

국감의 주인공은 국회의원이다. 이 자리에는 장관도, 재벌 총수도 불려 나간다. 현안을 잘 꿰뚫고, 권력과 재력 앞에 굴종하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참된 일꾼’으로서 국회의원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국감 스타’가 탄생하기도 한다.

3주에 걸쳐 진행된 올해 국감은 25일 종료된다. 주변 이들에게 물었다. “올해의 국감 스타는 누구인가요?” 대다수는 이렇게 답했다. “(걸그룹) 뉴진스 하니요.” 다시 물었다. “올해 국감의 주요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뉴진스 하니요.” 마지막으로 물었다. “뉴진스 하니를 불러 어떤 성과를 냈나요?” 대다수는 얼버무렸다. 3주를 투자한 올해 국감의 현실이다.

이 촌극은 오롯이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연출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호영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K-팝의 어두운 그늘인 따돌림 문제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해 살펴볼 것”이라고 하니를 참고인으로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지난해 52억 원을 정산받은 개인사업자 하니는 일반적인 ‘근로자’나 ‘노동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김유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도 국감에서 “현행 근로기준법상으로는 적용하기가 힘들다”고 답변했다. 게다가 2019년 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회사 직원인 매니저가 “무시해”라고 말했다는 하니의 주장이 과연 갑을 관계 속 직장 내 괴롭힘의 예시라 할 수 있을까?

안 위원장은 이날 하니를 촬영하는 고정 카메라를 설치한 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로 이를 생중계했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국회 현관 앞에서 하니의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았다. 개별적으로 하니와 만남도 가졌다고 한다. 이를 두고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최민희 위원장이 뉴진스 ‘사생팬’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또한, 하니는 외국인이다. 서툰 한국어 때문에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의문이 생긴다. 왜 통역사를 두지 않았나? 국감의 무게를 고려할 때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확한 의사 전달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다.

하니의 지명도와 높은 대중적 관심을 고려할 때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환기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하니의 주장은 진위를 가릴 수 없다. 하니는 피해를 호소하지만, 상대는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릴 증거도 없다. 하니의 목소리를 가볍게 흘릴 순 없지만,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바탕으로 애먼 피해자를 만드는 행위는 더욱 곤란하다.

그래서 다시 묻자. 하니를 부른 이번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은 어떤 성과를 거뒀나? 몇몇 의원이 하니와 더불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성공이다. 하지만 국감의 의미는 퇴색됐고,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염증은 가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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