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한글학회 회장

지난 12일 폐막된 파리올림픽에서도 확인됐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국가로 발돋움했다. 국격에 걸맞게, 한국어와 한글도 해가 지지 않는 언어가 됐다. 전 세계 85개국 248곳에 세종학당이 세워져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한류에 매료된 수많은 세계인이 한국어·한글을 배우고 있다. 또, 한국어는 전 세계 여러 나라, 여러 학교에서 제1 외국어로 채택되고 있다. 한국어 융성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지난 7월 27일로 서거 110주기를 맞은 주시경 선생의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런데 우리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들썩임과는 정반대의 기류가 느껴져 걱정된다. 많은 정치인이 거칠고 무례한 말을 공격적이고 모욕적으로 내뱉는가 하면, 많은 사회 지도층 인사는 외국어 사용을 자랑으로 여긴다. 또, 공공 기관의 이름을 외국 문자로 짓거나 영문 약칭으로 표기하니 도대체 어느 나라 기관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큰 기관뿐만 아니라 작은 기관도 마찬가지다. ‘동사무소’가 언제부턴가 ‘동주민센터’로 바뀌었다. 그런가 하면, 신문·방송의 말글에도 처음 보는 외국어가 홍수를 이룬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용어가 많이 생겨나고 흘러들어오는 탓도 있지만, 우리 말글을 지키는 최전방 방송 매체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최근에는 법정동(洞) 이름을 정체 모를 외국어로 짓겠다고 상위 기관에 신청했다가 승인이 거부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지역민들은 법정동 이름이 안 된다면 행정동 이름으로라도 쓰겠다고 한다. 자유 국가라 하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의무는 있다. 땅은 우리가 후손들로부터 빌려 쓰는 것이며, 땅 이름은 대대로 전승되고 문화와 전통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시적인 기분에 외국어로 지역 이름을 짓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파트 이름을 국적도 모를 외국어로 길게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시경 선생께서는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라고 했다.

우리는 위대한 선조들이 그 중요성을 깨닫고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우리 말글이 처한 오늘의 상황을 엄중히 깨달아야 한다. 우리 말글은 우리 스스로 지키고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우리 말글에 관한 한 정부·공공기관과 언론 및 민간 기구가 협조해 현상을 진단·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갈 장치인 ‘국어기본법’이 마련돼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세대가 우리 말글을 얼마나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쓰고 어지럽혔는지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정부와 언론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반성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 말글의 정확한 사용이 바탕이 돼 모든 국민의 지적 수준이 높아졌으며 정보 강국이 됐다. 또한, 교육을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오늘과 같은 경제·문화 강국이 되고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 성취에 만족할 게 아니라,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그것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제야말로 우리가 꽉 잡고 있다가 느슨하게 놓아 버린 우리 말글에 대한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온 국민이 알 수 있는 쉽고 정확한 말글 사용을 장려하는 국민운동이 필요한 때다. 외국인이 사랑하는 우리 말과 글, 우리가 더 사랑하여 말도 더 올리고 나라도 더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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