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원래 소속된 정보기관을 배신하고 다른 정보기관에 협조하는 사람을 디펙터(defector), 즉 내부첩자라고 한다. 냉전시대에 유명한 내부첩자로 소련 KGB 요원으로 영국 MI6에 협조한 올레크 고르디옙스키(86)와 미국 CIA의 소련 담당 책임자로 KGB와 내통한 올드리치 에임스(83)가 있다. 차이점은 에임스는 금전적 이익을 노려 조직을 배신한 반면, 고르디옙스키는 정의감 때문에 서방세계에 협조해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국군정보사령부 간부 출신인 군무원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와 별개로 현직 사령관과 여단장 사이에 진행되는 고소전 등 충돌과 군사 기밀 유출 사태는 망가진 정보·공작 역량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군무원에 의한 기밀 유출 문제와 관련,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해외 블랙요원들의 명단과 신상정보, 부대현황 등이 조선족 중국인에게 파일 형태로 전달되었다는 정도다. 문제는 국군방첩사령부에서 북한 연계 혐의로 간첩죄를 추가해 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지만, 디지털 범죄 특성상 최종 입증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점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모든 정보기관이 내부첩자를 막고자 사활을 걸고 있음에도 그들이 조직의 생리를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용이하지 않다. 에임스의 꼬리가 밟힌 것은 KGB의 고위층이 망명해 그를 내부첩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고르디옙스키는 에임스의 제보가 결정적 단서였다. 이번 사건의 실체도 우리 정보기관의 해커가 북한 정보기관 네트워크를 해킹하다가 파악하였다고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묻힐 수도 있었으며 그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우리 군 정보기관의 기밀 유출은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국방정보본부 소속 고영철 소령은 1990년 진급이 탈락되자 일본 취업을 목적으로 후지 TV 서울지국장 시노하라 마사토에게 접근해 2급 군사기밀을 넘겨주었다. 기무사 소속 A 소령도 중국 정보기관 요원 추정 인물에게 27건의 군사기밀을 해외(2013년) 및 서울·대전(2014년)에서 넘기다 적발되었다. 정보사 공작팀장이던 황모 씨는 2013년부터 2018년 4월까지 군사기밀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선배 공작팀장이던 홍모 씨에게 돈을 받고 넘겼으며, 홍 씨는 이를 두 나라 공관에 다시 팔았다.

고 소령은 4년간 수감 되었다가 출소 후에 일본 다쿠쇼쿠대 전임연구원으로 취업했다. 기무사 A 소령과 정보사 홍 씨, 황 씨도 4년 실형을 받았다. 이들이 모두 개인적 이익과 돈에 눈이 멀어 조국을 배신했음에도 처벌이 가벼웠던 것은 현행 방첩 관련 법규와 관련이 있다. 북한과 연계성이 확인되지 않아 간첩죄를 적용해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98조(간첩)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적국이란 우리와 정전 상태인 북한을 지칭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해외 입법사례를 보면 간첩 행위 대상국을 ‘적국’과 ‘외국’으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범죄 발생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합리적 선택이론’과 ‘억제이론’이 있다. 전자는 범죄는 손해와 이익을 합리적으로 평가한 결과이며, 후자는 처벌이 약한 만큼 범죄 발생이 높다고 설명한다. 현행 간첩 조항은 1940년의 일제 전시형법을 답습했다. 1953년 냉전 시대에 제정된 낡은 조항을 바꾸지 못하면 유사한 사례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의 법 개정 논의가 제21대 국회에서처럼 무산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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