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한 기술은 국내 38.8%의 일자리에서 70% 이상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불과 6년 뒤인 2030년에는 AI가 70% 이상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일자리의 비율이 98.9%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막연하게 여겨져 온 AI와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날이 현실화한다는 경고다.

이처럼 고용시장에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 정규직 과보호, 획일적인 근로시간 등 경직적 노동시장이 사양 산업에서 성장 산업으로의 인력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KDI 보고서도 AI시대에 신기술을 활용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提高)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국회에서는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법제 개선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AI발 노동 대전환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 국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은 파업 만능주의로 노사 갈등을 부추기고 불법 쟁의행위를 조장할 노동조합법 개정(일명 ‘노란봉투법’)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야당은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이유가 ‘헌법상 보장된 노동권을 무력화시키는 손해배상 남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조합 및 조합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한 전체 금액의 98.6%가 폭력적으로 사업장을 점거해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다. 그런 만큼 노동조합 및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면 먼저 사업장 점거나 폭력 같은 불법행위 관행부터 개선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노조법 개정안은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피해자인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사실상 봉쇄해 노조의 불법행위를 조장한다.

더 큰 문제는, 개정안이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본질로 하는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확대한다.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대한 다수의 형사처벌 규정이 있는데도, 객관적이지 않은 사용자 지위 기준은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경영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다. 더욱이 노동 규제에 따른 사법 리스크를 가장 우려하는 외투(外投) 기업들은 어떠한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단체교섭 거부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국내 시장을 떠날 것이 자명하다.

AI시대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이미 미국·중국·독일 등 주요국은 AI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지난 2년간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처하기보다 노란봉투법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노조법 개정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기업과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하루바삐 AI시대 고용·노동 변혁에 대비할 마지막 기회를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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