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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살며 생각하며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입력 2024-06-1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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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죽음은 모든 사람에 필연적 운명
회피할수록 불안하고 삶은 위축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대화하며
긍정하고 수용하려는 노력 필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면
죽어야 할 적절한 시기 판단해야


지난주에는 현충원을 다녀왔다. 6·25전쟁 참전 유공자인 부친의 유골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참배를 한 후 현충원의 묘역과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전직 대통령부터 무명용사까지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죽은 자가 되어 말이 없지만, 대통령으로서 영광과 치욕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도 누워 있고, 낯선 전쟁터에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을 무명용사도 잠들어 있었다. 모두 적멸의 세계에서 평안하기를 기원했다.

현충원을 돌아보면서, 18세기에 조성된 서양의 한 묘지에 새겨져 있다는 비문(碑文)을 떠올렸다. ‘지나가는 자여,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말라. 나 또한 한때는 그대와 같았고, 그대 또한 언젠가는 나와 같으리니, 죽음을 준비하고 순순히 나를 따르라.’ 이제 노년에 접어들었으니 죽음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 아직 몸과 마음이 팔팔하지만 죽음의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 죽음은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고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필연적 운명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어떤 모임에서든 피해야 하는 주제다.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은 죽음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양에는 공동묘지가 주거지역에 있는 곳이 흔하지만, 한국에서 묘지나 납골당은 외진 곳으로 격리되어야 하는 혐오시설이다. 한국인은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클 뿐만 아니라 죽음을 맞을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죽는다는 확실성과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껴안고 있는 중요한 삶의 문제다. 실존주의 심리치료자의 말처럼, 죽음을 배경으로 할 때 인생은 가장 투명하게 보인다. 생명의 유한성을 잊지 않아야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후회 없이 잘 살 수 있다.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앞두고 망설일 때는 죽음의 자리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 생각하면 좀 더 쉽고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다.

대개의 불안이 그러하듯이, 죽음은 회피할수록 더 두려워진다. 죽음 불안이 심할수록 삶은 위축된다. 조금이라도 위험성이 있는 다양한 상황과 대상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두려워하는 대상에 조금씩 다가갈수록 완화된다. 예를 들어, 죽음에 관한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고,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대처 방법을 사색하고, 종종 묘지나 납골당을 방문하면 죽음 불안이 누그러진다. 요즘은 깊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만나면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된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삶이 그러하듯이, 죽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다가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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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자인 로버트 코널리는 현대사회에서는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 일종의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사회는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존엄성을 상실한 채 고통 속에서 인생의 마지막 과정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죽음을 ‘적(敵)’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악(惡)’을 회피해야 한다. 현대인은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죽음을 긍정하고 수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코널리에 따르면, 죽음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는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죽음 수용의 핵심은 죽음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고 죽음 준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이다. 죽음을 수용하며 잘 준비한 사람은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다.

둘째는 ‘죽어야 할 적절한 때를 아는 것’이다. 인생의 한 시점에서 특수한 상황에 처하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불필요한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기 질환의 진단을 받거나 치매처럼 인지 기능의 심각한 퇴화가 나타나거나 어떤 방법으로도 완화되지 않는 통증을 겪으면서, 그 때가 됐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죽을 권리’나 ‘존엄한 죽음’은 죽음의 시기를 선택하는 권리와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는 ‘죽으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죽으려는 의지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신이 죽어가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좋은 죽음에 이르려는 결심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죽으려는 의지는 죽음에 이르기 위해서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행위(수술, 투약, 영양 공급 등)를 거부하거나 안락사와 같은 적극적 선택을 하겠다는 결심을 의미한다. 죽음을 수용한다는 것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자신이 죽어야 할 적절한 시기를 판단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문제가 좀 더 깊이 있게 논의돼야 한다. 안락사는 자칫 생명의 가치를 경시하고 죽음을 강요하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비참한 삶을 지속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안락사가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 있는 권리도 존중돼야 한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잘 죽어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삶의 질만큼 죽음의 질도 중요하다.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죽음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 자세는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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