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

지난 2일 국회에서 세입자가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대신 물어주는 내용의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치는 안건이 통과됐다.

이 개정안에 대해 여러 쟁점이 주목받았다. 첫째로, 공공기관이 피해자에게 먼저 지원하고 추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서 비용을 보전한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 회수액이 극히 적거나 없을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특정한 유형의 사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게 옳은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둘째로, 공공기관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의 계산으로는 약 5조 원이 들 것이라 하고, 한 시민단체는 최대 5000억 원 미만의 재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이 들어가는 정책이라니 걱정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과연 전세제도가 인위적으로 유지돼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에 없는 전세제도는 세입자·집주인·정부 모두에 좋은 제도다. 세입자는 월세 부담 없이 집을 빌려 썼고, 집주인은 적은 돈으로 집을 사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었다. 정부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백만 호의 임대주택을 공급했다. 이처럼 전세제도가 보편화한 것은 계속 주택 가격과 전세가가 오르고, 금융기관에서 대출 받기가 어려운 등의 여건 때문이었다. 이런 전제가 더는 성립하지 않게 되면서 많은 사람은 ‘전세의 종언’을 예측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집값이 내려갔고, 더 내려간다는 전망이 퍼졌다. 집주인들은 미래의 자본이득을 기대하고 당장 들어오는 돈이 없는 것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전세보다는 월세로 집을 내놨다. 세입자들 역시 집값이 내려갈 것 같으니 집을 사기보다는 전세를 선호했다.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었으니 전세가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월세 계약의 비중이 높아지면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진다. 2015년 기준 OECD 회원국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 비중이 평균 20%인데, 우리나라는 15%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전세제도인데, 월세가 보편화하면 우리나라 주거비 비중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서 역대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의 임대차 3법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새삼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세 세입자를 지원하려는 또 다른 접근은 전세금반환보증과 전세대출보증 등이다. 얼핏 보면 정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임차인들을 안심시키는 좋은 제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 보증 제도들은 전세시장 참여자들의 행태를 바꿔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는 독(毒)이 됐고, 대규모 전세 사기가 가능했던 배경이었다. 보증제도 아래서 은행들은 대출 심사를 소홀히 하며, 세입자들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일부 세입자는 아예 사기에 가담하기도 했다. 또, 보증기관이 위험에 상응하는 적정한 보증료를 부과하는 것도 아니다. ‘전세의 종언’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들 보증이 전세제도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전세제도를 유지시키고, 그로 인한 온갖 문제를 떠안는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까? 국회와 정부는 주택 문제를 둘러싼 정쟁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