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인이 지난 7일 서울 도봉구 선거사무소에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활짝 웃고 있다. 윤성호 기자

■ 현안 인터뷰
22대 총선 ‘험지’ 도봉갑서 승리…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인

초유의 두차례 연속 총선참패
당장 전당대회부터 잘 치러야
최소 50%라도 민심 반영해야

원내 野보수정당 특수한 상황
개혁신당과도 보수 개혁 경쟁

딸얻고 육아정책 피부로 느껴
3040세대 문제 국정에 녹여야
보수정당 다시 사랑받게 될것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인에게 지난 4월은 겹경사였다. 4·10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보수 진영의 ‘험지 중 험지’인 서울 도봉갑에서 승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년 전 대선 때 패배했던 지역구에서 유일하게 승리했다. 그리고 20일 뒤 4월 30일에는 첫딸을 얻었다. 딸의 성장과 ‘국회의원 김재섭’의 정치 행보가 나란히 가게 됐다. 30대 ‘초보 아빠’ 김재섭은 “제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 딸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60대 이상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정치인이 사는 세상과는 너무 다를 것”이라며 “육아하는 내내 관련 정책들을 피부로 느끼고 바꾸고 관철시키는, 저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보수 정당이 다시 사랑받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당선인은 “총선 참패보다 더 큰 위기는 잇따른 총선 패배로 당내 ‘학습된 무기력’이 엄습하는 것”이라며 “미래 담론을 제시하는 새로운 보수 정치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당선인과의 인터뷰는 지난 7일 치열했던 총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서울 도봉구 선거사무소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선도, 득녀도 축하드린다.

“국회의원 당선된 게 즐거운 건 딱 반나절이다. 반나절 즐거웠던 건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분들이 실망하지 않게 돼서 감사했다. 반나절 지난 다음부터는 너무 많은 좋은 동료들이 낙선했고, 민주당은 무지막지한 의석수를 얻은 데 대해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낙선한 사람들 몫까지, 강북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30대에 거는 기대까지 짊어지고 있는 무게와 책임감이 느껴졌다.”

―김재섭은 어떻게 이겼나.

“무전략이 전략이었다. 애초에 처음 총선 출마할 때 ‘그냥 고향으로 가겠다’고 했다. 20대 총선 결과만 봤어도 한 번쯤 더 고민했을 텐데 그냥 갔다. 그리고 21대 총선을 담담히 치렀다. 정말 ‘잔재주’를 안 부리려 했다. 한 분이라도 더 만나고 한 분의 주민 의견이라도 더 반영하려 했다. 4년간 전략, 꼼수, 잔머리 안 굴리고 그냥 열심히 했다.”

―김재섭의 개인기로 이긴 느낌이다.

“지난 총선 패배 후 4년이란 시간 동안 개혁의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더 높았던 지역구 중 국민의힘이 이긴 데는 전국에서 도봉갑 하나다. 반면 윤 대통령이 앞섰지만 총선에서는 패배한 지역구가 48개나 된다. 후보의 개인기라는 게 있다면, 그게 전혀 먹힐 수 없는 선거였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후보들은 굉장히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다. 더 걱정되는 건 보수 정당이 연이은 패배를 한 것도 헌정 사상 처음이고, 역대급 총선 참패가 두 번 연속되고 2016년 총선까지 3연패를 한 건 엄청난 위기인데, 수도권은 당연히 지고 강남 등 일부 지역이라도 ‘건지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학습된 무기력’ 같은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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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은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으로 인해 실제 자신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음에도 자포자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다. 학습된 무력감이라고도 한다.

“(수도권 낙선자들 사이에서) 뭘 해도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무기력감이 엄습하는 것 아닌가, 대단히 우려스럽다. 앞으로 4년을 정말 잘해야 한다. 당장 전당대회부터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8년 전, 4년 전 총선 패배 때보다 당이 더 평온하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보수 정체성 재건’을 우선 내세웠다.

“2017년 탄핵 국면 이후 보수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논의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등을 제외하고 압도적으로 패했다. 이번 총선 투표율이면 보수층은 거의 다 나온 거다.”

―국민의힘은 왜 졌나.

“결국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를 못 이겨 냈다. 대통령의 부정 평가가 상당 기간 낮은 상태로 유지되는 동안 여당이 대통령실과 다른 목소리를 내왔느냐, 때로 정부에 매서운 회초리를 가하는 정당으로 역할이 새겨졌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국민 대다수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당이 억지 변론하며 우스운 모양을 만드는 게 많았다. 거기에 더해 여당 내부적으로 못난 모습까지 보여주니 졌겠지.”

―정말 보수 정당의 한계가 온 것 같다.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여야 모두 못마땅한 2030의 표심을 누가 잡느냐인데, 민주당도 후지긴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반공과 시장 자유주의 말고 아직 제대로 내세운 게 없다. 그리고 우리가 내놓는 시장 자유주의도 잘 살펴보면 ‘사장 자유주의’다. 적어도 2030은 이 당에 표를 줘야 할 이유를 못 찾는 거다. 2007년 대통령 선거 이명박 대 박근혜 경선, ‘시장 보수’ 대 ‘안보 보수’의 구도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했다. 미래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보수 정치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전당대회 룰은 어떻게 돼야 하나.

“민심을 최소 50%는 반영해야 한다. 우리 당이 잘됐을 때는 민심을 활짝 열어뒀을 때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민심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이는 당이 되기 위해서라도 5대 5는 돼야 한다. 그리고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 정당에 대한 보조금이 세금에서 나오는 것뿐 아니라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대부분 국가 권력으로 가는 길은 정당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당적이 있는 당원들끼리 (결정)하겠다는 건 공당으로 굉장히 무책임한 판단이다.”

―어떤 사람이 당 대표가 돼야 하나.

“딱 하나다, 개혁.”

―어떤 청년 정치를 하고 싶나.

“‘청년 정치’란 말도 싫고 청년 정치를 하기도 싫다.”

―그럼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새로운 보수 정당의 미래를 여는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다. 민주당이 말하는 대부분의 담론은 국가 미래를 고갈시키는 것이고 후손의 미래를 앗아가는 것이다.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면서도 사회적 약자가 없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욕을 먹어야 하고 지지층의 이반도 견뎌내야 하는데,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100년을 만드는 정치를 하고 싶다.”

―이준석·천하람의 개혁신당과 공유하는 부분도, 함께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고 본다. 어떤 관계가 돼야 하나.

“개혁신당은 야당으로 자리매김하지만 동시에 보수 정당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 원내 건전한 경쟁 관계에 있는 보수 정당이 두 개 있는 건 특수한 상황이다. 결국 보수 진영 내에서의 경쟁이 되고 ‘개혁 전쟁’이 될 것이라고 본다. 적어도 개혁신당과 김재섭의 관계는 보수 진영 내의 개혁 전쟁이라고 본다.”

―이번에 떨어졌어도 계속 도봉에서 도전하나.

“그랬을 것 같다. 내가 정치를 계속한다면 당연히 여기서 했을 거다. (지역구를 옮길) 영민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더 좋은 지역을 골랐을 거다.”

―첫목회에 유일한 당선인이다(첫목회는 이번 총선에서 주로 수도권 험지에 도전했던 3040 후보들의 모임이다).

“원외 모임이다 보니 국회 내에서 목소리를 내려면 실무적으로도 (원내 인사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저는 운이 좋아서 당선됐지만 낙선자들의 마음과 훨씬 더 가깝다. ‘우리 당이 이대로 가면 큰일 나는데’ 하는 부분은 다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수도권 원외 인사들의 경우 4년을 버텨서 승부를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못 버티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우리 당에 희망이 생기고 젊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키워 나갈 환경이라면 좋겠는데 그런 상황도 아니고 걱정이다. 4년을 버텨도 공천 걱정부터 새로 해야 하면 버티기가 쉽지 않다. 이번 총선 3040 낙선자들은 정말 좋은 사람이 많다. 보수의 미래 담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괜히 청년 정치니 뭐니 하면서 그때그때 새로운 인재를 수혈하듯 영입해서 쓰고 버리지 말고 지금 있는 이분들의 목소리를 존중해 주는 구조가 됐으면 좋겠다.”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이 답을 하던 김 당선인은 수도권 낙선자들에 대한 질문에서는 이례적으로 뜸을 들이고 한마디 한마디 꾹꾹 눌러 담은 답을 내놨다. 그만큼 험지에서 버텨낸 이들에 대한 연대가 깔려 있고, 보수 정당의 변화의 필요성과 절실함이 녹아 있어서일 게다.

―둘째 생각은 있나.

“셋째 생각도 있다.”

김 당선인은 지난달 30일 첫딸을 얻은 뒤 꼭 필요한 외부 활동 외에는 조리원에 있는 부인과 딸을 챙기고 있다.

“둘이 작은 아파트에 살다가 애가 생기니 이사를 해야 했다. 바로 옆 아파트로. 주거 문제가 생기더라. 학업을 하고 있는 와이프가 학업을 마무리할 수 없게 됐다. 경력 단절 문제다. 애가 어느 정도 크면 (와이프가) 다시 학교도 가야 하니….”

―보육 문제도 생기네.

“나는 여의도, 와이프는 신촌까지 도봉에서 가야 하니 직주 근접이 왜 중요한지도 깨닫고, 저출산에는 우리 사회문제가 다 담겨 있다는 걸 느꼈다. 문화적 문제, 연봉 등등. 근데 우리 정책들은 시원찮잖아. 육아 지원 정책 신청해서 받을 수 있는 것들 정리해서 해보고 문제 있는 건 국회에서 해결해보고, 딸의 생애 주기 내내 정책들을 팔로업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정책을 관철해보고 싶다. 중산층 가정, 서울 끝자락에서 사는 일상을 겪고 있는 3040세대가 겪는 문제들을 체험해보고 정책이나 국정 방향에 녹여내려 한다. (딸의 존재로)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이해가 생길 것 같다.”

사무실 한편에는 4대째 도봉에 터를 잡아 살고 있는 김 당선인이 지난 4년간 지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야당을 비판하는 정치 구호 대신 현수막에 담았던 ‘독감 무료 접종 안내’ ‘노후주택 수리 지원 안내’ 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김 당선인은 ‘한 초선 A 의원’ 이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보수 정치를 열어보겠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