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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살며 생각하며

봄꽃과 할머니

  • 입력 2024-04-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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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 작가

봄이면 어김없이 노점 벌여
상추·풋고추·호박잎 등 팔아

소소한 수입 풍요롭지 않아도
건강하고 활기차게 만드는 힘

내가 사는 건 푸성귀가 아니라
할머니들의 존엄한 삶의 태도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봄꽃처럼 그렇게,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참으로 고마울 일이다. 잊지 않고 나와 줘서. 네 분, 아파트 입구에서 따개비처럼 자리를 지키고 앉아 푸성귀들을 파는 노점의 할머니들 이야기다.

처음에는 한 할머니가 직접 키운 채소들을 들고 와 파는가 싶더니 어느새 네 분으로 늘어나서는 가지고 온 푸성귀들을 자신들의 발치에 부려놓았다. 일렬횡대로 자리를 잡고 앉은 할머니들이 파는 것은 단순했다. 상추나, 풋고추 혹은 호박잎 같은 푸성귀들과 직접 집에서 만들었음 직한 된장이나 고추장이 전부였다. 번듯한 좌판도 없이 그저 가져온 푸성귀들을 자루째 그대로 부려놓고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조금씩 덜어내 파는 이 할머니들은 언제부턴가 그렇게 아파트 입구의 한 풍경이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나 한겨울 혹한이 들이닥칠 때 외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냈다. 자리를 지키는 일이 마치 자신들에게 부여된 의무와 책무라도 되는 양 한결같았고 여일했다.

그러니 겨울 한철 동안 비어 있는 그 자리가 허전하고 허수할 수밖에. 정말, 어쩌다 한 분이라도 보이지 않을 때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한여름 폭염에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들숨에 빨려 들어오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할머니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가지고 온 푸성귀들이 시들거나 물크러질까봐 그늘을 만들어주거나 물을 뿌려 주며 견뎌냈다.

삶이 저러해야 할 것이다. 그 할머니들의 모습이, 그 삶의 자세가 하나의 죽비로 다가들었다. 자글자글 팬 주름에 순하게 흘러내린 피부로 미루어보아 칠순의 중반은 훌쩍 넘겼을 법한데 그들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건강하며, 주체적이다. 여생을 편히 부려도 좋을 연세임 직한데, 길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이라도 있는지 할머니들은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과 함께 등장해서는 가을 끝자락에 약속이나 한 듯이 한날 동시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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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목련이 환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던 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 할머니들 모습에 안도했다, 여전히 건강하구나 싶어. 그 할머니들의 등장으로 허전하던 그곳의 풍경도 비로소 완성되었다. 빠진 그림 조각을 끼워 넣은 듯 그렇게. 이제 몇 달 동안,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도록 할머니들은 낯익은 풍경으로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할머니들 앞을 지나쳐가거나, 흥정하거나, 갓 수확한 채소들을 사 갈 것이다. 그 채소들은 어느 집 식탁에 깔밋하게 올라가서는 누군가의 한 끼를 책임지고는, 또 그 누군가의 피와 살로 저장될 것이다. 할머니들의 수고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이는 일이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일인 것이다.

나 또한 그 할머니들이 갓 따온 상추와 풋고추와 호박잎과 고구마 줄기를 사서 식탁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햇볕 따가운 날, 나는 또 그 할머니들에게 마트에서 사 간 시원한 생수를 건네기도 할 것이다. 그 생수가 폭염을 잠재울 수는 없겠지만, 할머니들의 갈증은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다는 말이 주는 위안과 익숙함과 지루함은 삶이 무사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익숙함이 주는 나른함과 권태로움도 고마울 일이다.

삶의 가치와 의미는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할머니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을 때, 비록 몸은 고단하지만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는 만족감과 성취감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봄이 시작될 무렵이면 나는 할머니들에게서 푸성귀들을 사기 위해 굳이 지갑 안에 현금을 챙기곤 했다. 그리고 일부러 나가 필요 이상의 푸성귀들을 샀다. 행여 다른 할머니들이 마음 상할까봐 한 할머니에게서는 풋고추를 사고, 한 할머니한테서는 상추를 사고, 다른 할머니에게서는 호박을 사고, 또 다른 할머니에게서는 가지나 오이를 샀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주는 대로 받아들고 값을 치렀다. 더 달라고, 우수리로 더 담아 달라고, 정이니 한 줌 더 집어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그 우수리와 덤 역시 할머니들의 노고와 수고의 결정물이니 어떻게 쉽게 더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산 건 푸성귀가 아니라 할머니들의 시간과 노고와 수고와 할머니들의 존엄한 삶의 태도였다. 손수 가꾼 채소들을 팔아 거둬들이는 그 소박한 수입은 할머니들의 삶을 부자들처럼 풍요롭고 화려하게 변화시켜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땅을 일구고 굳은 의지로 생을 경작해내는 그네들의 삶은 여전히 젊고 건강하며 활기가 넘칠 것이다.

나 역시 그분들처럼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삶을 경작해내는 생의 일꾼이 되고 싶다. 내게 주어진 생의 시간 동안, 그렇게, 게으름 부리지 않고 성실히. 누가 읽든 읽지 않든, 책으로 엮이든 엮이지 않든 여일하게 글을 쓰고 싶다. 그 글이 읽히기 위한 달콤한 글이 아닌, 영혼을 담아내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이 키운 푸성귀들이 누군가의 피가 되고 살이 되듯이.

오늘 저녁은 상추쌈으로 해야겠다. 그 안에 할머니들의 웃음과 땀과 한숨 노고도 함께 넣어야겠다. 또 한 시절, 힘차게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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