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인천 부평구 등
홈페이지서 실명 비공개 전환
창구직원 명찰도 없애는 추세

“신상 숨긴다고 폭언 막아질까
책임행정 의지만 저하” 우려도

인천 = 지건태·수원 = 박성훈 기자

최근 공무원을 죽음에까지 몰고 간 악성 민원이 발생하자 직원의 신상정보 공개를 축소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이른바 ‘좌표 찍기’로 공무원의 신상을 퍼뜨리는 민원인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한다는 취지인데 지자체 일각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5일 전국 각 지자체에 따르면 부산 해운대구를 시작으로 인천 부평·미추홀·서구, 경기 김포·오산시, 충남 천안시 등이 이달 들어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했던 직원 실명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민원실 창구와 행정복지센터 직원의 명찰도 아예 없애거나 달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내달 열릴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에서 ‘직원 정보 부분 공개(성명 비공개) 전환’에 대한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인천 서구청 홈페이지에서 주차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검색하면 ‘김○○ 주무관’이라는 성과 직위만 표시된다. 서울 양천구도 공무원의 사진·이름·담당 업무가 표시된 조직도에서 사진을 가렸고, 서대문구는 이달 말까지 직원 사진을 제거한 조직도로 교체할 예정이다. 앞서 인천시는 지난달에 각 부서 사무실 현판에 부착한 좌석 배치도상에 직원 사진을 제거했다. 경기도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민원대응공무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설문을 한 뒤 이르면 이달 말부터 비실명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지난달 5일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인 A 씨가 민원인의 집단 괴롭힘으로 사망하면서 공무원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민원인이 올린 A 씨의 실명과 소속 부서, 사무실 전화번호 등이 나돌았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현판 등에 공무원의 사진과 실명을 반드시 표출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는 없어 이런 조치는 앞으로 전국 지자체로 확대될 전망이다. 현행 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 복무규정(대통령령)에는 ‘공무원은 근무 중 그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단정한 복장을 착용해야 한다’고만 명시됐다. 지난달 21일부터 직원의 신상정보 공개를 축소한 해운대구는 최근 자체 조사에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김성수 해운대구청장은 “이번 조치는 더 안전한 근무 여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무원의 신상공개 축소가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공무원의 이름을 숨긴다고 해서 악성 민원인의 폭언과 반복 민원을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도 민원인이 요구하면 해당 공무원은 소속과 신분을 밝힐 수밖에 없고, 행정문서 등의 정보공개 등을 통해서도 쉽게 실명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원 인천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 이름을 가리는 것이 오히려 ‘책임행정’에 대한 의지만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