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비대위 ‘기자회견’예고하자
박단 “합의 안 해” 하루만에 부인

정부 ‘증원 열린자세’ 강조 무색
의료계 지속 내분땐 대화 어려워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대 2000명 증원’ 등에 대한 의료계의 통일된 의견을 발표하겠다며 예고한 ‘합동 기자회견’이 무산 위기에 빠졌다. 전공의 대표가 기자회견 성사를 부정하고, 차기 의협 회장마저 현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를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의료계는 또다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의대 2000명 증원 조정에 대한 ‘열린 자세’를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의료계가 내분으로 ‘통일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총선 이후 의·정 대화 성사도 불투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전날 SNS를 통해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지난 7일 의협이 전공의·의대생·개원의 등 여러 의료 단체의 의견을 모아 대정부 창구 단일화를 추진해 총선 후 합동 브리핑을 열겠다는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전국의대교수비대위(전의비) 관계자는 “예고한 대로 총선 후 이번 주 합동 기자회견을 열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 상황”이라며 “전공의들이 대화에 나서겠다는 의견을 모으지 않는 한 상황은 계속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빅5’ 병원 교수는 “전공의들은 ‘증원 백지화’가 아니면 안 된다는, 즉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학교를 먼저 생각하는 교수들은 최대한 빠르게 대화 테이블에 앉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너무 강경해 합동 기자회견이 무산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방재승 전의비 위원장은 이날 “지금 발생하는 잡음은 적절한 통일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비록 번복하긴 했지만 정부도 한번 들여다본 ‘증원 1년 유예안’ 등 의료계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를 표했다.

의협 내부도 분열 조짐을 보이며 ‘단일 대오’가 무너지는 모습이다. 오는 5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임현택 차기 회장이 대화 의향을 보였던 비대위를 두고 ‘조기 대표 교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전날 “비대위 운영 과정에서 당선인의 뜻과 배치되는 의사 결정과 대외 의견 표명이 여러 차례 이뤄졌고, 이로 인한 극심한 내외의 혼선이 발생했다”며 의협 비대위에 비대위원장 교체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정원 감축론’까지 주장하는 강경파 인사로, 박 비대위원장을 ‘내부의 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임 회장은 전날 SNS에 “정부가 근거에 입각한 합리적이고 통일된 대안을 제시하면 논의 가능하니 대안부터 의협에 제시하기 바란다”며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부는 그동안 일관되게 “의료계에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의대 증원 규모를)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의료계에 통일안을 요구했는데, 사실상 이를 거부한 것이다. 정부가 먼저 대안을 가져와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주요 대형병원 교수들이 주 52시간 진료 등 진료 축소에 나서면서 환자들의 불편은 커지고 있다. 외래의 경우 초진 예약을 받지 않는 병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이 류머티즘을 앓고 있다는 보호자 A 씨는 “근처 대형병원 모두 초진 예약이 무한정으로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다”며 “큰 병원에서 더 자세히 진단검사를 받고 싶은데 왜 하필 지금 아파서 이런 피해를 보는지 정말 속상하다”고 말했다.

전수한·노지운·조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