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뒤로가기
검색/메뉴
검색
메뉴
국제

“러시아군에게 유린당하는 소녀, 죽고 있는 내 친구를 도와 주세요”

김선영 기자
김선영 기자
  • 입력 2022-11-03 15:44
  • 수정 2022-11-03 15:55
댓글 폰트

이미지 크게보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만 8개월을 넘긴 가운데 우크라이나 외교단 3인이 2일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진행된 ‘라운드 테이블’에서 한국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나 호프코 전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장, 다리아 칼레니우크 우크라이나 반부패 행동센터 공동 설립자, 올레나 트레구브 NAKO 사무총장. 김동훈 기자



“‘율리아’라는 내 친구는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에게 납치를 당했어요. 그 후로 그 친구가 보디캠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실상을 찍었는데, 아이들이 너무도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었어요. 아직 10대에 불과한 소녀들이 러시아군에게 무참히 강간당한 뒤 살해당하는 걸 볼 수밖에 없는 게 너무 무력합니다”

2일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여성 외교단 3명은 기자에게 ‘매일 죽음을 마주하며 사는 삶’ 속에서 사는 기분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참담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영국 더블린에서 한국으로 막 넘어왔다는 이들의 표정 속에는 ‘담담한 고통’이 서려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러시아군 탱크 위에 올라가 노는 어린이들. AFP연합뉴스



특히 우크라이나 안보 분야 부패방지에 힘쓰는 비정부기구 ‘NAKO’의 올레나 트레구브 사무총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가고 있는 여성들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와 함께 자리한 한나 호프코 전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장은 “틱톡·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활동하던 어린 소녀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며 “가끔 이들을 강간·유린하는 영상이나 사진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기자들이 직접 와서 이런 현장을 담아가서 한국어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다리아 칼레니우크 우크라이나 반부패 행동센터 공동 설립자는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기자들이 위험 속에서도 우크라에 들어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의 현실을 담아가고 있다”며 “한국 기자들이 이런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쟁이 일어난 국가에서 도움을 호소하러 온 이들 외교사절단의 행보는 100여 전인 1907년 한국 특사 3인방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규탄하고 일본이 강제 체결한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갔던 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헤이그에 도착하고도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장외에서 ‘망국의 한’을 토로해야 했다. 100여 년 전 힘이 없어 침략당한 슬픔을 억누르며 목소리를 내야 했던 ‘헤이그 특사’들과 한국을 찾은 우크라이나 외교 사절단 3인방 마음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헤이그 특사’들은 결국 만국평화회의 회의장에 들어가는 데에 실패했지만 이들은 세계의 언론인들에게 한국의 비참한 실정을 알리고 ‘망국의 한’을 토로하는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를 내놨다. 100년 전 한국의 아픔은 이 같은 형태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미지 크게보기 헤이그 특사 이준(왼쪽부터), 이상설, 이위종. 연합뉴스



이미지 크게보기 1907년 7월 10일자 네덜란드 신문 헤그쉐 쿠란트에 실린 헤이그 특사 활동 기사 일부. 연합뉴스



이날 인터뷰가 시작할 때 들어온 이들의 손에는 한국의 가을을 곱게 담은 ‘낙엽’들이 들려있었다. 오는 길에 땅에 떨어진 이파리들을 주어온 듯했다. 낙엽을 든 우크라이나 외교 사절단 3인방의 손이 아름다워 몇 번을 바라봤다. 나라를 잃고 죽음이 닥치는 감당 못 할 슬픔 속에도 ‘순간의 아름다움’은 남아있다는 것. 그것이 지독한 서러움 속에도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될 터이다. 부디, 이들이 내년 가을에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로운 낙엽들을 손에 쥐고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선영 기자

이 기사를 친구들과 공유해 보세요.

문화일보 주요뉴스
<em class='label'>[단독]</em> ‘독도는 日고유영토’ 표현…4 ~ 6학년 모든교과서로 확대
[단독] ‘독도는 日고유영토’ 표현…4 ~ 6학년 모든교과서로 확대 일본 정부가 금명간 발표할 것으로 전해진 2023년 초등학교 3~6학년 사회 교과서 검정 결과 강제징용이나 독도 관련 기술이 기존보다 후퇴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돼 우려를 낳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추진 의지와는 별개로 영토·역사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 정부 입장을 일본 측에 분명히 전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외교가에 따르면, 올해 일본 문부과학성이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통해 실시한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 10여 종 검정 결과 강제징용 기술에서 강제성이 삭제되는 방향으로 수정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가 2021년 각의를 통해 강제연행이나 강제노동과 같은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공표한 점이 그 근거로 지목된다. 2019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까지는 강제징용에 대해 ‘노동력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조선인과 중국인을 강제로 끌고 와 광산 등에서 노동에 종사시켰다’고 기술됐다. 독도 문제의 경우 기존 대부분 교과서에 담겼던 ‘일본의 영토’라는 표현이 ‘일본의 고유영토’ 등으로 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9년의 경우 3학년 교과서에는 독도 관련 기술이 없었지만 이번에 지도표시를 통해 한국의 불법점거 등 대목이 들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2019년 이후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일관계가 일본 교과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교과서 검정 사실 확인시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대사 초치 등으로 대응할 전망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일관계 개선 노력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선 일본에 우리 입장을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인들은 한국의 강제징용 3자 대위변제 해법에 대해 63%가 긍정적 평가, 21%가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여론조사(24~26일·18세 이상 일본 유권자 927명 대상) 결과 나타났다. 다만 68%는 “한국 측 방안으로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가했고, 한일관계 전망에 56%가 “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김유진·김선영 기
가장 많이 본 뉴스
안내 버튼

최근 12시간내
가장 많이 본 뉴스

기사 댓글

본문 글자 크기를 조절하세요!

※ 아래 글자 크기 예시문을 확인하세요.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본인에 알맞은 글자 크기를 설정하세요.

닫기
좋은 기사는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