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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소로(素露) 이혜복(李蕙馥·1923∼2013)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약하며 혈기왕성했던 언론인 소로 이혜복 기자의 세계적인 특종 ‘국군 평양 탈환 입성기(入城記)’는 동족상잔의 처참한 한국전쟁사는 물론 우리 언론사에 영원하고도 귀중한 불멸의 증언으로 남을 한 편의 드라마다.

평생 언론인으로 초지일관하며 대한언론인회 회장과 상임고문으로 언론문화 창달에 사랑과 열정을 쏟다가 91세로 세상을 하직한 그의 언론 생애는 정론 강직 명필의 서사시를 엮어낸 거보(巨步)였다. 이혜복 선생은 90성상을 올곧은 자세로 언론 보도 가운데 사회부문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언론인 복지를 위해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이 시대 언론계의 큰 어른이다. 23세 혈기왕성하던 1946년 언론계에 투신한 이래 90 춘추(春秋)를 맞기까지 언론현장과 언론기관, 단체에서 한평생을 보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종군기자로서 전장을 누비며 전투상황을 생생하게 보도해 명성을 날렸거니와 특히 1960년대 동아일보의 성가를 올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종군기자’ ‘명사회부장’으로 빛나는 족적을 남긴 소로의 언론일로 기록은 우리 언론사에 또 하나의 귀중한 증언으로 영원히 빛날 것이다.

소로 선배와 필자는 2010년 7월 역사적인 6·25참전언론인회를 결성하면서 인연의 고리가 깊어졌다. 이때 나는 이사가 돼 선배와 동행자가 된 것이다. 2012년 4월 6·25참전언론인회 정기총회에서 선배는 나를 차기 회장으로 추대해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선배와 일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은 부지런하고, 매사에 치밀하며 빈틈이 없는 신중함, 정도와 원칙을 지키는 강한 의지, 편애하지 않는 탁월한 리더십, 하고자 하는 일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강한 신념과 남다른 추진력 등이다.

소로의 그런 집념과 의지로 오늘의 대한언론인회가 궤도를 다졌고 6·25참전언론인회도 제 길로 접어들었다. 대한언론인회는 물론 6·25참전언론인회가 지향하고 추진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어려움이 있지만, 소로의 집념과 의지, 정신만은 높이 받들어야 할 것이다. 1977년 4월 97명의 회원으로 발족한 4·7 언론인회를 사단법인 대한언론인회로 위상을 격상하고 초창기 기금으로 적지 않은 3000만 원 기금조성에 앞장섰다. ‘대한언론상’과 ‘효행상’ 제정, 이슈별 대토론회 개최, 역사문화탐방, 체력단련 행사, ‘한국언론인물 사화(史話)’ ‘우리는 이렇게 나라를 지켰다’ 발간 등 괄목할 만한 사업들을 진행했다. 이런 일들은 소로의 집념과 언론 철학이 바탕이 돼 역동적으로 펼쳐온 결과물이다.

퇴직 언론인 단체가 단순한 친목단체로 안주해서는 안 된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활기 넘치는 단체로 위상을 드높였다. 사단법인으로 격상한 것도 소로의 탁월한 추진력과 뜨거운 열정, 숨은 공로의 결실이다.

6·25참전언론인 35명과 종군기자 43명 등 총 78명의 이름을 새긴 명패를 국방부와 프레스센터에 헌액, 자유와 평화 수호에 기여한 언론인을 예우하며 감사함을 전한 고고한 인품의 소유자다. 위국헌신의 정신, 동족상잔의 비참한 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고 선진 조국 건설의 토대를 마련한 언론인들의 빛나는 공헌을 기억하게 한 숭고한 기자정신은 한국 언론사의 귀감으로 영원할 것이다.

기자는 천직이라며 격동 반세기 현장을 누비며 역사를 기록해온 평생 언론인, 공정과 정도(正道)를 걸어온 한길 언론인, 90성상 학(鶴)처럼 고고하게 정론을 폈다. 노당익장(老當益壯) 언론인의 표상을 보이시다가 이승을 떠나 하늘나라를 여행하며 후배 언론인들을 굽어보고 계실 소로 선배의 자상한 모습이 새삼 그리워진다.

고려 말 ‘3은(隱)’인 목은 이색 후예인 이인구-조관호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 방봉세 여사와 결혼, 평생의 반려자로 해로하고, 충원, 양원, 향원 2남 1녀를 남기고 떠나셨다. 소로의 장례를 대한언론인회장으로 모시며 고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9년 세월이 흘렀으니 세월의 무상함과 인명은 재천임을 다시 생각하며 옷깃을 여민다.

박기병 대한언론인회 회장, 6·25참전언론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