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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 20. 미야케 이세이(三宅一生)

패션계 하드캐리해 왔던 거장, 지난달 간암으로 세상 떠나… 1970년대부터 끊임없이 전세계에 충격적 디자인 선봬
건축가 자하 하디드·애플 스티브 잡스, 그의 옷만 입어… 다른 디자인 분야·예술에도 큰 영향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은 이후로 그간 지속됐던 모든 것들이 막을 내리고, 좋든 싫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느낀다. 디자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대의 멱살을 잡고 그야말로 홀로 하드캐리해 왔던 위대한 거장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어 한 시대가 지나가는 것을 절감한다. 미야케 이세이의 갑작스러운 별세가 그렇다.우리나라에서는 바오바오백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는 1970년대부터 세계 패션 디자인계를 이끌면서 끊임없이 충격적인 디자인을 해왔던 사람이었다. 그의 디자인은 단지 패션이라는 틀에서 멈추지 않았고, 수많은 디자인 분야와 예술 분야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1.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디자인했던 자하 하디드가 그것을 잘 입증해 준다. 그녀도 만만치 않은 건축으로 세계를 강타했던 디자이너였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미야케 이세이를 꼽았다. 그녀는 항상 미야케 이세이의 옷을 입고 다니면서 그것을 입증했다.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도 미야케 이세이의 티셔츠만 입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 특히 예술가들이 그의 디자인을 좋아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1. 항상 미야케 이세이의 옷을 입었던 건축가 자하 하디드.

2. 미야케 이세이의 매장에 가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의 패션 매장은 도저히 상업적인 물건을 파는 매장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술적이다. 그는 이런 디자인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2. 패션 매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술적인 미야케 이세이의 매장 전경.

3. 샤시코라는 천으로 만든 1972년의 패션을 보면, 그 옛날에 디자인됐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당시 그는 세계 패션의 중심이었던 파리에서 이런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어쩐지 일본적인 느낌이 아주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3. 일본적인 이미지가 세련된 현대적 조형으로 표현된 미야케 이세이의 패션.

4. 1977년에 디자인된 이 헐렁한 옷은 입체 패턴, 즉 다양한 천조각으로 입는 사람의 몸에 꼭 맞는 옷을 만들었던 당시의 패션 경향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시각으로 봐도 신선하다. 거의 포대 자루처럼 큼직한 크로스백도 옷의 헐렁함과 잘 어울리는데, 지금은 이런 디자인이 그렇게 낯설지 않지만 당시로는 매우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옷을 몸에 달라붙지 않도록 헐렁하게 만들고, 주름을 피하지 않고 디자인하는 것은 일본을 비롯해 동아시아 전통 복식의 경향이었다. 그의 디자인에서는 항상 일본의 전통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4. 옷 전체가 헐렁해서 자연스럽게 주름이 많이 지게 만들어진 패션.

5. 낚싯줄의 재료로 만들어진 얇고 탄력 있는 한 장의 천에 똑딱이 단추를 여러 개 고정시킨 다음, 각 단추를 끼워서 원피스 형태로 만든 디자인은 미야케 이세이의 뛰어난 실험정신을 잘 보여준다. 한 장의 천으로 옷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아주 뛰어나다. 그런데 이런 패션 디자인의 콘셉트는 무언가 일본의 종이접기 전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휘어지고 주름지는 형태에서는 매우 동아시아적인 미학적 가치를 읽을 수 있다. 미야케 이세이는 이렇게 파리 한복판에서 활동하면서도 줄곧 동아시아적인 미학, 일본의 전통성을 현대 패션에 구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그의 이런 노력은 1990년대에 큰 성과를 얻는다. 그것은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라는 섬유의 개발과 함께였다. 주름치마와 같은 구조인데, 특수처리를 해서 수축된 상태로 있다가 쉽게 늘어나기도 하고 곧바로 원래의 형태로 수축되는 천이었다. 이 천으로 그는 일본의 전통 복식 구조를 완벽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게 된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5. 한 장의 모노 필라멘트 섬유에 붙어있는 여러 개의 똑딱이 단추를 끼워서 만든 원피스, Dove.

6. 우리의 한복이나 일본의 기모노는 구조적으로는 특징이 유사하다. 사이즈가 따로 없고, 입으면 입체가 되고 벗으면 평면이 된다. 한복이 아름다운 곡선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특징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기모노와 한복은 크기에 대한 융통성,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존재론적 변신에 그 특징이 있다. 미야케 이세이는 전통 복식의 이런 특징을 플리츠 플리즈로 완벽하게 현대화했다. 천이 탄력 있게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으니 상의의 경우 앞뒤를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이 플리츠 플리즈 옷은 그냥 둘둘 말아서 보관할 수가 있다. 주름이 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구겨서 보관하는 게 좋다. 이 소재로 만들어진 옷이 등장하자 세계 패션계는 완전히 충격에 빠졌다. 똑같은 모양 천 두 조각이면 멋진 상의가 되니, 수많은 천조각으로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 왔던 세계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선입견이 와해되는 충격에 휩싸이게 됐던 것이다. 일단 이런 소재가 만들어지자 그는 이것을 활용해서 기능적인 옷이 아니라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하고 조각 같은 옷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6. 주름 구조로 된 플리츠 플리즈 소재.

7. 신기하게도 오른쪽 위의 사각형 천을 입으면 독특한 옷차림이 만들어진다. 일단 천이 움직임에 따라 늘어나니까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입었을 때 옷차림은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조각품을 입은 듯하다. 기존의 옷이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강력한 인상을 자아낸다. 가볍지 않고 예술적이다. 이런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그는 혁명적인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7. 놀랍도록 조각적이면서도 기능적인 플리츠 플리즈 소재의 패션.

8. 이후로 선보였던 옷들은 모두가 뛰어난 조각적 면모를 보여줬다. 패션 디자인, 아니 어떤 창조 분야에서도 볼 수 없는 혁명적인 가치를 드높였다. 무엇보다 그의 이런 디자인 안에는 일본의 전통, 일본 문화의 본질이 항상 깊게 배어있다. 그는 패션 디자인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마음에 뒀던 목표를 완벽하게 실현하면서 세계적인 거장으로 활약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8. 옷이면서도 조각적이고 실험적인 면모를 가득 보여주는 그의 패션들.

9. 나중에는 천을 납작하게 접어서 프레스한 다음, 이 천의 일부를 위로 당기면 마술처럼 원피스 모양이 만들어지는 디자인을 연출하며 패션의 본질을 거의 밑바닥까지 바꿔 놓기도 했다. 일반적인 패션디자이너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본질적인 영역을 건드리며 옷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그의 솜씨는 거의 도사에 가까워 보인다.

이미지 크게보기 그림9. 납작하게 접힌 천을 들어 올리면 원피스가 되는 No.1.

그는 이렇게 평생을 전통적이면서도 본질적으로 새로운 패션 세계를 탐구해 나가다가 얼마 전에 편안한 세계로 갔다. 한동안 그가 없는 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그의 디자인은 바오바오백 말고는 아직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매우 아쉬운 일이다. 비록 우리에게는 패션 브랜드로 먼저 다가오기는 하지만, 미야케 이세이는 상업성을 한참이나 넘어선 존재로 세계 패션계에 우뚝 서 있고, 모든 창조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사람이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미야케 이세이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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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 : 히로시마 출생

- 1964 : 다마미술대학 그래픽 디자인 졸업

- 1970 : 미야케 이세이 디자인 스튜디오 설립

- 1973 : 파리 컬렉션 참가

- 1977 : A Piece of Cloth 발표

- 1979 : Issey Miyake East Meets West 발표

- 1980 : 새로운 주름방식 실험 시작

- 1983 : Issey Miyake Spectacle : Body Work 발표

- 1990 : Issey Miyake Pleats Please 발표

- 1993 : 브랜드 Pleats Please Issey Miyake 시작

- 1997 : A-POC 프로젝트 시작

- 2004 : 재단법인 미야케 이세이(三宅一生)디자인문화재단 설립

- 2007 : 21_21 Design Sight 개설, 디렉터 취임

- 2016 : 도쿄 국립미술관에서 회고전

- 2022 :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