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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경선 후유증 흑역사

기사입력 | 2021-11-19 11:34

이도운 논설위원

한국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처음 중대한 후유증이 발생한 것은 1992년이다. 민정·민주·공화 세 계파로 이뤄진 민주자유당의 경선에서 민정계 이종찬·민주계 김영삼이 맞붙었는데, 세 불리를 느낀 이종찬이 돌연 경선 거부를 선언하고 탈당했다. 그해 5월 예정대로 치러진 경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선출돼 12월 대선에서 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종찬은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으로 발탁됐지만, 경선 불복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정치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당 대선 후보 경선이 후유증을 넘어 대선 결과까지 좌우한 것은 1997년 신한국당 경선이었다.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한 이인제 후보가 당을 뛰쳐나가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출마했다. 그해 12월 제15대 대선에서 이인제는 무려 19.20%나 득표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40.27%, 한나라당(신한국당 후신) 이회창 38.74%를 감안하면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인제는 대선 뒤 국민회의에 입당해 유력한 차기 후보로 떠올랐지만, 결국 2002년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고 만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은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에게 정치적 축복이자 저주가 되고 말았다. 치열한 경선에서 이긴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서도 손쉽게 승리해 제17대 대통령이 됐고, 경선 현장에서 깨끗이 승복했던 박 후보도 이어 18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경선 때 불거졌던 BBK·다스 소유자 논란, 최태민·최순실 일가 관계가 결국 부메랑이 돼 두 대통령 모두 영어의 몸이 됐다.

2007년의 교훈 때문인지 2012·2017년 대선에서는 여야 각 당에서 경선으로 인한 특별한 후유증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국민의힘 모두 또다시 경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재명 후보에게 밀린 이낙연 후보는 선대위 상임고문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선거전에 참여하지 않는다. 윤석열 후보에게 석패한 홍준표 후보는 아예 선대위 참여도 거부하며 청년 플랫폼을 만들어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이낙연·홍준표 모두 자기 당 후보의 신상 변화 가능성을 기다린다는 분석도 있다. 이심홍심(李心洪心)인데, 마치 감나무 아래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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