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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명은 이미 저울질당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21-10-08 11:09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 문화일보·예스24 -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 기쁨’

4차 공모 大賞 -‘생명 가격표’ 이재준 씨 선정


문화일보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책 읽기와 글쓰기 문화 증진을 위해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 예스24와 함께 진행하는 ‘국민 서평 프로젝트 - 읽고 쓰는 기쁨’ 4차 공모에서 ‘생명 가격표’(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민음사)에 대한 한의사 이재준 씨의 서평이 대상 수상작으로 뽑혔다. 우수상 수상작은 김초엽의 소설 ‘지구 끝의 온실’(자이언트북스)에 대한 박정훈·신숙희 씨의 서평, ‘우리는 실내형 인간’(에밀리 앤시스 지음·마티)에 대한 서효은 씨의 서평이다. 이번 공모에는 122편의 서평이 접수됐다. 국민 서평 프로젝트 5차 서평 도서는 정유정의 소설 ‘완전한 행복’(은행나무)과 한동일의 에세이 ‘믿는 인간에 대하여’(흐름출판), 조너선 라우시의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부키), 캐서린 샌더슨의 ‘방관자 효과’(쌤앤파커스)다. 공모 마감은 11월 4일이다.

생명 가격표│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연아람 옮김│민음사

예방의학 시간에 ‘손실 보정 연수’ ‘장애 보정 연수’ 등 측정되기 어려운 개인의 삶의 질이나 건강을 계량화하고 이것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내용을 배운 적이 있다. 당시에는 개인의 건강, 생명을 숫자로 바꾸고 돈으로 바꾸는 것에 반감을 느끼기보다 어려운 문제에 명쾌한 답을 얻은 것 같은 속 시원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번은 강의를 들으러 갔었는데 제공된 단체 급식 때문에 식중독에 걸렸다. 그 때문에 약 2주간 일을 하지 못했으며 이후에도 간헐적 설사가 반복돼 불편함을 겪었다. 하지만 손해사정인은 식중독으로 인한 장염을 외래 치료하는 기간에 해당하는 나의 근로소득과 치료비만 보상금으로 지급이 가능하고 당일 장염으로 귀가하지 못해 발생한 숙박비, 후유증으로 인한 치료비, 갑작스러운 병가로 인해 근무지에서 인센티브를 얻을 기회를 놓친 것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과연 과거에 배웠던 건강과 질병, 생명과 죽음을 돈으로 환산하는 방법이 명쾌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명 가격표’는 이러한 나의 의문을 잘 풀어준 책이다. 통계와 보건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는 재난과 사고 보상에 대한 국가 정책,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에서 보이는 사법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기업 정책, 노동시장과 임신 중단 등의 이슈 속에서 사람의 생명과 죽음, 질병과 건강을 계량화한 ‘생명표’를 분석하며 이러한 과정이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고, 일관성도 없으며 특히 사회적 소수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생명을 도외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생명표를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개인이 사망했을 경우 살아있다면 얻을 수 있는 근로소득과 연금을 계산하는 방법, 개인이 어떤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지불할 의향이 있는 금액, 개인으로 하여금 어떤 위험을 감내할 만한 금액 등이다. 행정, 사법, 기업, 건강보험, 생명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는 사례도 설명했다. 또한 개인의 생명 가격을 동일하게 여기거나 하한선과 상한선을 두는 것이 생명 가격을 개인마다 다르게 책정하는 것보다 사회적 소수자와 취약 계층의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 방법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생명표를 작성하기 위한 자료를 얻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선택편향(설문조사에 응할 만큼 건강에 관심이 있고 여유가 있는 계층만 응답함), 사망한 개인 외에도 주변 지인들이나 가족들이 받았을 정신적인 충격 등 고려되지 않는 요소, 생명표의 책정으로 혜택을 볼 대상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른 결과의 변동성 등을 근거로 생명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저자가 현실적으로 생명에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고 이미 많은 분야에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은 놀랍다. 인터넷 서평을 보면 이 책에 대해 “대안이 없는 책이다” “사람 생명 값이 다 똑같지 않은 걸 지금 알았느냐” 등의 비판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의 궁극적인 주장은 이러한 계산 과정이 겉보기보다 과학적 근거가 탄탄하지도 않고, 분야마다 일관성도 없으며, 계산 과정에서 기업이나 기득권 등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가 들어가기 쉬우므로 이 과정을 되도록 많은 사람이 숙지해서 ‘모니터링’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 다니며 당연히 생명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고 인간은 국적과 인종, 성, 계층을 불문하고 모두 평등하다고 배웠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익숙하게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저울질당하고 있다. 생명보험을 들 때 어떻게 보험료를 계산하고 있고 건강보험에서 어떤 기준으로 보험으로 보장하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비급여)를 나누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없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얼마나 적절한 배상이 이뤄져야 하는지 또한 모른다. 그러한 생각은 소수 전문가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이러한 상황은 꽤나 불공정하고 편향된 결과를 사회에 가져올 수 있다. 앞으로는 우리 모두 ‘생명 가격 모니터링단’이 돼야 하지 않을까.

이재준(1991년생. 프로 서평꾼을 지망하지만 진료에 쫓기는 한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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