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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전단금지법 치욕’ 갈수록 키운다

기사입력 | 2021-04-14 11:42

이정훈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 前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오는 15일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랜토스인권위원회가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대북전단금지법’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청문회를 연다고 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명색이 동맹국인 한국이 인권 문제를 놓고 북한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되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북핵 대응, 쿼드(Quad) 참여 문제 등으로 한·미 양국이 엇박자로 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청문회가 한미동맹을 한층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자유민주주의·법치 등 ‘공유된 가치’를 기반으로 한 동맹국 협력 체계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홍콩 선거제 개편, 신장위구르와 티베트 등 소수민족 탄압을 비판하며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내세워 시진핑 국가주석을 몰아붙이고 있다. “중국은 인권 유린 대가를 치를 것이며, 시 주석도 그것을 안다”고까지 한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런 큰 흐름 속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미국에 예외일 순 없다. 인권을 강조하면 한반도 평화 구축이 어려워진다는 논리는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지난 수십 년 간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북한이 단 한 번이라도 호의적으로 나온 적이 있는가. 그런데도 문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12월 14일 전단금지법을 강행 처리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이 법안에 대해 비판 여론이 쇄도한 것은, 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북한에서는 바깥세상에 대한 주민의 알 권리가 박탈됐기 때문이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은 일찍이 한국의 전단금지법과 같은 조치들이 “미국의 신행정부 정책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다.

커비 위원장의 예측은 적중했다. 이번에 열리는 미 의회 청문회는 어떻게 보면 전단금지법뿐 아니라, 문 정부가 그동안 취해 온 일련의 대북 인권정책에 대한 총체적인 경고일 수도 있다. 3년 연속 북한인권결의 공동제안국 참여 거부, 국제법을 무시한 북한 선원 2명 강제 북송, 국내 북한 인권 단체들에 대한 사무조사 등의 조치들은 그동안 미국을 불편케 한 게 분명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의 협력을 강화해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서겠다는데, 한국은 북한 인권을 무시하고 중국과 북한 눈치만 보면서 미국과의 갈등을 초래한 것이다.

통일부는 최근 미 인권 청문회에 대해 “국내 청문회와 성격이 다르다” “의결 권한이 없다”는 등으로 톰랜토스인권위원회의 조치를 애써 일축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2008년에 별세한 랜토스 전 하원의원을 가족처럼 여겼다는 사실을 알고 한 언급인지 잘 모르겠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 인권과 가치를 앞세워 국제질서를 ‘자유진영 대 중국’ 구도로 만들려 한다. 이 와중에 자유 진영에 있어야 할 한국이 미 인권 청문회 대상이 됐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북한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걸 자초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대북전단법을 폐지해야 한다. 만약 훼손된 우리 이미지와 정체성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다면 바이든이 구상하는 가치동맹 구축에 자연히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미 인권 청문회에 서는 치욕이 앞으로 반복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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