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실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학생이 ‘다수결’을 꼽는다. 고등학교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잘못된 이론을 적용하면, 북한도 민주주의 국가이고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도 민주주의 국가로 봐야 한다. 심지어는 나치 독일도 민주주의라고 말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 즉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위해 철저하게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실현돼야 하고, 권력분립을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도화돼 있어야 한다. 이런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만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반한다.

다수결은 결정 방식의 하나다. 인간사회와 정치에서 활용되는 결정 방식은 무수히 많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에 합당하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인간이 이성적인 방법이나 합리적 절차를 통해 따지고 또 따져봐도 옳은 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잠정적 결정을 위해 채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다수결 방식이다. 옳은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논란만 할 수 없으니 우선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동조하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나마 부득이 따라야 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이기 때문이다.

이성적 선택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비판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비판은 비난과 구분해야 한다. 비난은 근거 없이 상대방의 선택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비판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나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기주장이 옳음을 밝히는 과정이다. 이성을 무시하는 선택 방식은 다수결이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민주주의로 포장될 수 없다.

무조건 다수결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다수결이야말로 ‘다수의 폭정’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단순히 머릿수로 압도하면서 이성적 대화나 비판을 무시하고 핍박한다면 잘못된 선택은 필연적이다. 폭정은 꼭 주먹을 휘두르고 총칼로 상해를 입혀서만이 아니다. ‘왕따’나 ‘언어폭력’, 더 나아가 언론(비판)을 억압하면서 다수의 힘을 빙자해 자신들의 주장과 이익을 밀어붙이면 그것이 바로 폭정이다. 다수의 폭정은 깨어 있는 이성적인 국민 개개인에게는 참지 못할 모욕이요, 생각 없이 따라가는 감성적 대중에게는 슬픈 환멸일 뿐이다. 다수결을 앞세운 다수의 폭정은 모두를 지옥문으로 안내해 간다.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저술팀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배수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이민창 조선대 행정복지학부 교수,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김서영 미 콜로라도 덴버대 공공정책학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