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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위세 떨친 班村·쓸모 잃은 성냥공장… ‘사라진 것들’을 추억하다

박경일 기자 | 2021-03-18 10:00

경북 의성 사촌마을의 만취당 대청에 앉으면 기둥과 기둥, 창호문과 창호문 사이로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완연한 봄기운으로 가득한 마을 풍경이 마치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놓은 듯하다. 만취당은 ‘보물’이지만, 반들반들한 대청마루에는 누구든 올라앉을 수 있다. 경북 의성 사촌마을의 만취당 대청에 앉으면 기둥과 기둥, 창호문과 창호문 사이로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완연한 봄기운으로 가득한 마을 풍경이 마치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놓은 듯하다. 만취당은 ‘보물’이지만, 반들반들한 대청마루에는 누구든 올라앉을 수 있다.


■ 경북 의성 ‘옛마을’

하루 1만여갑 생산하던 ‘성광성냥공업사’ 문 닫았지만
미술프로젝트 통해 모빌·조형물 설치… ‘예술 골목’ 변신
산업유산 지정돼 2025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한옥·슬레이트집 뒤섞여 고즈넉한 매력의 사촌마을
류성룡 외조카가 지은 ‘만취당’이 필수 방문코스
대청마루서 내다보면 마을 전경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남녘 땅에 꽃소식이 들려오면서 이름난 봄꽃 명소마다 행락객 인파가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채 가슴 졸이며 보내야 했던 지난 겨울은 참으로 우울했지요. 봄날의 꽃소식이 예년보다 훨씬 더 반가운 건 그래서일 겁니다. 반가운 봄이지만, 그래도 아직 자유스러운 여행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꽃이 만개했다고, 이만큼 좋다고, 모두 가보시라고 무책임하게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이 좋은 봄날에 나들이하지 마시라는 뜻은 아닙니다. 북새통이 되는 이름난 관광지를 피하고,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시간대를 택해 조심스럽게 다녀오시기를 권합니다. 그래서 찾아 권하는 여행지가 경북 의성입니다. 의성은 이웃 안동의 명성에 가려져 과소평가된 곳입니다. 의성에는 문 닫은 성냥공장과 오래된 시장, 돌담이 이어지는 고즈넉한 옛 마을, 산수유꽃의 노랑과 마늘밭의 초록, 쏟아져 내리는 별을 올려다볼 수 있는 자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성에는… 고요하고 한적한 봄이 당도해 있습니다.


# 쓸모를 잃은 것의 쓸쓸함을 찾아가다

성광성냥공업사. 경북 의성에는 6·25전쟁 직후인 지난 1954년에 문을 연 성냥공장이 있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성냥산업은 대호황이었다. 전국에 300곳이 넘는 성냥공장이 성업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성냥을 쓸 일이 많았을까. 성냥은 한때 ‘최고의 집들이 선물’이기도 했다. 그때는 성냥 브랜드도 다양했다. 팔각형의 유엔 성냥을 비롯해 비사표, 기린표, 아리랑표…. 의성의 성광성냥공업사에서는 네모난 나무 상자에 담긴 ‘향로표 성냥’을 만들었는데,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 지방이나 섬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다. 스프링 장치로 뚜껑이 자동으로 닫혀 습기의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이었다.

성냥은 라이터란 강력한 대체재가 등장한 뒤에도 오래 살아남았지만, 값싼 가스 라이터가 보급되고 생활방식이 달라지면서 성냥의 퇴역은 급속도로 이뤄졌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라지는 물건이 어디 한둘인가. 그렇지만 성냥의 퇴역을 보는 느낌은, 다른 물건이 사라질 때와는 좀 다르다. 성냥은 시대에 뒤떨어져 쇠락했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을 상징한다. 희미해져 가는 낡은 추억과 쓸모없어진 것의 쓸쓸함이 성냥에는 있다. 경북 의성에서 성광성냥공업사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 어쩐지 폐광된 쓸쓸한 탄광 마을을 가는 느낌과 비슷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광성냥공업사는 2018년부터 시작된 마을미술프로젝트를 통해 매력적이고 독특한 여행지로 재탄생했다.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주민들을 모티브로 ‘발화(發話), 남겨진 기억의 풍경’이란 주제 아래 마을미술 작업이 진행되면서 의성전통시장에서 성냥공장에 이르는 골목 곳곳에 쓸쓸하되 따뜻했던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예술작품을 세웠다. 지역 주민들에게서 수집한 성냥공장에 대한 기억이 다양한 미술작품이 돼 방문객을 맞이한다.

골목의 미술작품은 화려한 것도, 규모가 큰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작고 소박하고 따스해서 마음에 더 잘 스민다. 좁은 골목길에 모빌을 달고 조형물을 설치했으며, 담벼락에다 성냥공장 다니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내걸었다. 골목 한쪽의 손바닥만 한 공터에다 성냥을 형상화한 조명을 설치하기도 했고, 주택가 공원에 조형물을 세워 두고 부조와 글씨를 새겨넣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골목으로 난 작은 창에다 방범창처럼 덧댄 철제 창틀이었다. 고양이나 풍경, 새 등을 창틀에 새겼는데 저녁에 방불을 켜면 조명이 바탕색이 돼 창틀에 새긴 형상이 그림처럼 떠올라 그 모습이 골목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소읍의 누추한 주택가 골목을 기웃거리면서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해내는 재미가 훌륭하다.


# 쇠락한 공장이 미술로 다시 그려지다

성냥공장 주변은 마을미술 작업으로 단장됐지만, 의성향교와 마주 보고 있는 성광성냥공업사의 철문은 아쉽게도 굳게 닫혀있다. 산업유산으로 지정된 성냥공장은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정부지원을 받아 오는 2025년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성냥공장은 뜻밖에도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가내수공업 정도로 생각했는데, 웬만한 공장보다 더 컸다. 성냥을 만드는 데 사용된 기계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많고 다양했다. 성광성냥공업사는 6·25전쟁 와중에 북한에서 정미소 경리로 일하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과수원을 운영하던 실향민 양태훈 씨와 서울의 삼촌에게서 성냥 기술을 배워온 김하성 씨 등이 1954년 2월 창업했다. 공장은 승승장구했다. 한창때는 공장 직원만 162명에 달했고, 하루 1만5000갑의 성냥을 생산했다. 그 무렵에는 의성읍 주민만으로는 일손을 대지 못해 일직, 단촌까지 통근버스를 운영했을 정도였다.

문 닫은 성냥공장의 담에는 성광성냥공업사를 ‘마지막 성냥공장’이라고 썼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2013년 성광성냥공업사가 폐업으로 이어지게 된 휴업을 시작했는데, ‘비사표 성냥’을 만들던 경남 김해의 경남산업공사는 성광성냥공업사가 문을 닫고도 4년을 더 버티다가 2017년에야 문을 닫았다. 진짜 마지막 성냥공장은 비사표 성냥의 경남산업공사인 셈이다. 겨우겨우 살아남아서 그때까지 견딘 것이니,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이라는 게 무어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두 회사는 성냥공장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과 기억, 그러니까 마지막 성냥의 시대가 끝나는 장면을 공유하고 있다.

문을 닫아걸고 있는 성냥공장 내부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공간처럼 보였다. 휴업이 길어지면서 폐업으로 이어졌다는데, 휴업 결정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한순간에 내려진 모양이었다. 건물은 허물어져 가고 있었지만, 공장의 성냥개비 생산 라인에는 기계를 통해 나오는 성냥이 정지화면처럼 그대로 남아있다. 창고에는 아직 유황을 입히지 않은 성냥개비가 가득 담긴 커다란 포대가 스무 개가 넘었다. 공장의 달력은 2013년 11월에 멈춰있었고, 그 옆에 박아놓은 못에는 생산공정에 필요한 아교와 염소산의 용량을 적은 메모지가 꽂혀있었다.

폐업 절차를 거쳐 순서대로 정리한 게 아니라, 내일이라도 다시 곧 일하러 나올 것처럼 남아있는 공간이 애잔했다. 쓸모를 잃은 것들의 안쓰러운 퇴장이다.


# 고즈넉해서 더 좋은 그윽한 옛 마을

의성은 여행 목적지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성냥공장 얘기를 먼저 하긴 했지만, 의성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그윽한 정취의 옛 마을 두 곳이었다. 한 곳이 자하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북쪽의 사촌마을이고, 다른 하나가 금성산을 마주 보고 있는 남쪽의 산운마을이다. 두 곳 모두 내로라하는 가문이 모여 이룬 마을인데, 사촌마을은 옛집과 슬레이트 시골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마을을 이루고 있고, 산운마을은 기와집과 돌담의 한옥으로만 이뤄진 마을이다. 두 곳 모두 ‘시간의 깊이’가 진하게 느껴진다.

의성의 전통마을이 여행자들 사이에서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결정적인 게 안동 남쪽의 의성이 ‘안동을 거쳐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의성의 사촌마을이나 산운마을의 정취가 아무리 좋다 한들 그것만으로 안동의 오랜 전통마을과 유서 깊은 세도가의 고택들을 다 지나쳐 찾아가야 할 이유를 찾긴 어렵다. 안동에 근사한 옛 마을과 옛집이 좀 많은가 말이다. 의성의 고택이나 전통마을이 안동에 비해 고즈넉한 맛이 있다고 해도, 그 규모와 크기는 안동에 대면 아무래도 모자란다. 다른 지역에 있었다면 제법 이름났을 명소도, 하필 안동 근처에 있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여행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고즈넉한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의성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의성의 두 곳 전통마을 중에서는 사촌마을을 추천한다. 옛 모습을 더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은 산운마을이지만 산운마을의 고택은, 아쉽게도 대부분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반면 사촌마을의 한옥은 개방성이 뛰어나다. 대부분 문을 열어두고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한옥과 슬레이트집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 옆으로 자그마한 구멍가게와 낡은 간판을 단 상점들이 있고, 오래된 양옥집 옆으로는 400년 묵은 향나무가 이끼로 뒤덮인 채 우람하게 서 있다. 사촌마을의 매력은 이런 자연스러움이다.

사촌마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마을 가운데 있는 만취당이다. 보물로 지정된 만취당은 영남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서애 류성룡의 외조카 김사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지어낸 대청이다. 현판은 집주인과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했던 한석봉의 솜씨고, 목조 천장의 대들보 한쪽에 얹힌 꽃문양은 서애 류성룡의 어머니가 하회 시댁 나들이에 타고 다녔던 가마 틀이라고 알려졌다. 누각처럼 올려 지은 만취당 대청마루 끝에 앉아 내다보면 마을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만취당 마당에는 수백 점의 수석을 전시해 놓았다. 캐나다에 거주하다가 세상을 떠난 문중의 어른이 평생 수집한 수석이라는데, 제법 볼만하다. 귀한 수석을 꺼내 놓고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는 집 주인의 마음이 고맙다.

산운마을에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살던 반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학록정사를 비롯해 소우당, 운곡당, 점우당 등 전통 고가옥이 서른 채에 달한다. 산운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집안에 급제자가 나오거나 벼슬자리에 오르면 회화나무를 심었다. 마을 곳곳에서 자라는 회화나무는, 마을을 이루고 있던 가문의 당당했던 위세를 얘기해준다. 산운마을에서 가장 빼어난 고택이라면 단연 소우당이다. 소우당은 안채 바깥에 별당건물을 거느리고 있는데 별당 앞의 너른 마당에 비대칭의 연못을 놓고 측백나무와 소나무, 산수유나무, 대나무 등을 심어 가꿨다. 그런데 아쉽게도 산운마을의 다른 고택들처럼 소우당도 늘 문이 잠겨져 있어 아쉽다.


# 흐드러진 봄꽃과 쏟아지는 별빛

여느 해 봄이었다면 가장 먼저 전했을 꽃 소식을 맨 뒤로 미뤄서 짧게 전하기로 한다.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인파가 몰리는 봄꽃 나들이를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의성의 봄꽃은 그나마 덜 알려졌으니 조심스럽게 다루기로 한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다 지역 주민들까지 외지인 방문을 꺼려 꽃놀이 여행이 주저되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른 봄꽃 명소보다 의성의 산수유마을이 좀 나은 것은, 머물며 꽃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걸으며 즐기는 꽃놀이’가 제격인 곳이기 때문이다. 의성 산수유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물길을 끼고 꽃이 만발한 산수유나무 아래를 산책하는 것으로 꽃놀이를 한다.

이른 봄에 화르르 모여 피어나 꽃놀이를 부르는 봄꽃은 매화와 산수유다. 매화는 섬진강 변의 광양과 하동이, 산수유의 대표명소로는 전남 구례의 산동마을이 꼽히는데, 덜 알려졌지만 의성의 산수유마을도 정취는 이에 못지않다. 의성군 사곡면 화전 1, 2, 3리 일대에 산수유나무가 자라는데, 숲실의 화곡저수지에서부터 마을까지 물길을 따라 4㎞ 넘게 이어지며, 수령 300년이 넘은 나무들이 자그마치 3만 그루에 달한다. 의성의 산수유꽃은 지금 딱 절정이다. 의성 산수유마을의 산수유나무에는 지난해 가을 수확하지 않은 붉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어 가지가 온통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산수유 꽃이 흐드러지는 화전리라고 하니 ‘꽃 화(花)’에 ‘밭 전(田)’ 자로 짐작했는데, 뜻밖에도 ‘벼 화(禾)’에 ‘온전할 전(全)’을 쓴다. 산중의 거친 골짜기를 온전히 벼를 심어 기르는 옥토로 만들어놓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지금이야 산수유는 봄꽃을 보는 ‘꽃나무’가 됐지만, 먹고 살기 어려워 약재가 되는 열매를 팔아보고자 척박한 땅에 산수유를 심었던 과거 그때는 어디 그게 꽃으로 보였을까. 화전리의 산수유 꽃 노란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마늘밭의 진초록이다. 의성은 마을로 이름난 고장답게 어딜 가나 진초록 마늘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의성의 산수유마을을 찾아간 길이라면 한 곳을 더 추천한다. 화전리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사곡면 음지리에서 양지리로, 거기서 다시 오류리로 이어지는 산길에 ‘달빛공원’이 있다. 이렇다 할 시설 없이 손바닥만 한 공간에 조성한 공원인데, 여기서 그야말로 하늘 가득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할 수 있다. 달빛공원이라지만, 여기서는 달빛보다는 별빛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호젓하게 봄밤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 세상에 하나뿐인 카페

의성전통시장에는 레트로 느낌의 카페 ‘향촌당’이 있다. 100년 넘게 가업으로 이어오던 시아버지의 방앗간과 솜틀집을 며느리가 카페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일제강점기 지어진 목조건축물의 원형을 살려 세련되게 다듬어낸 카페에서는 커피와 함께 직접 짜낸 참기름과 미숫가루를 판다. 카페 겸 방앗간인 셈이다. 카페 한가운데에는 130년 된 솜틀 기계도 가져다 놓았다. 솜틀집을 운영하던 시아버지가 쓰던 것이다.

의성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의성읍의 문 닫은 성냥공장과 의성전통시장을 잇는 골목에는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설치한 미술작품이 곳곳에 있다. 사진 위는 대장간 내력을 적은 인터뷰를 걸어놓은 의성전통시장의 대장간. 사진 아래는 성냥을 형상화해 만든 나무에 불이 들어온 모습. 성냥공장으로 이어지는 주택가 골목에 있다. 사진 위는 훌륭한 비례감을 갖춘 의성의 빙산사지 오층석탑. 탑에 올려진 사자상은 복제품. 진품 두 개는 일제강점기 도난당했고, 나머지 두 개는 대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사진 아래는 의성 사촌마을의 만취당 곁에서 가지를 뒤틀며 400년을 자란 아름드리 향나무 노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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