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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시각]

대통령의 사면론, 뭘 노리나

허민 기자 | 2021-01-19 11:41

허민 전임기자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자 고도의 정치 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한 생각을 털어놨다. 그의 입장은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더 깊은 고민을 할 때가 올 것이지만,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자들의 예상질문 1번이었던 만큼 사전에 고치고 또 고치면서 준비했을 텐데, 여전히 겉도는 답변처럼 들린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그의 사면론은 지지층 달래기, 야권 이간(離間)책, 친문 재집권 등의 정교한 정치 코드로 짜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의 사면 조건으로 내건 ‘국민 공감대 형성’이란 전직 대통령들의 ‘사과·반성’을 뜻한다. 하지만 일련의 수사·재판 과정을 정치탄압으로 여기는 두 전직 대통령이 이런 요구에 응할 리 없다. 대통령이 이 같은 단서를 삽입한 것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박·이 사면론’ 제기 이후 불거진 핵심 지지층의 거센 반발, 그리고 국정 지지율 추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친문 진영을 겨냥한 명분 축적용이다.

그런데도 전직 대통령을 임기 내내, 그것도 둘씩이나 감옥에 붙잡아 두는 것은 현직 대통령으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재판이 끝난 동시에 언제 사면할 것인지에 대한 복잡한 계산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특히 여성 대통령이 옥고를 치르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둘에 대한 문 대통령의 사면은 ‘형 집행 정지-사면 단행’의 2단계 방안으로 가거나, 내년 3월 대선 직후 차기 대통령 당선인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1997년 김영삼(YS) 대통령은 대선 이틀 후인 12월 20일 김대중(DJ) 당선인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단행했다.

사면은 대통령이 국민통합 차원에서,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결단해야 할 사안이다. 박·이 둘에 대한 ‘형 확정’이란 기본 요건이 충족됐다는 점에서 18일 신년회견은 사면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낼 적기였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의 눈이 친문 지지층만 향해 있고, 그의 머릿속이 내년 3월 대선과 관련한 이해득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국민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진영의 대통령’에 가깝다는 증좌다.

진영의 대통령은 반대자의 분열을 꾀한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은 대선을 5개월 앞둔 7월 9일 DJ를 사면했다. 이후 피선거권을 획득한 DJ와 YS 간에 대권을 둘러싼 ‘양김 갈등’이 전면화했다. 6월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시민사회조차 YS 지지의 ‘후보 단일화’ 그룹과 DJ 지지의 ‘비판적 지지’ 그룹으로 쫙 갈라졌다. 끝내 타협하지 못한 두 사람이 모두 출마했고, 그 결과는 노태우 당선이었다. 전두환의 DJ 사면 명분은 국민통합이었지만 노림수는 야권 분열과 군사·권위주의 정권 연장이었다. 이런 ‘사면의 정치학’을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모를 리 없다. ‘박·이 사면론’은 친문 재집권을 노리는 집권세력의 야권 이간책과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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