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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함연지 ]

뮤지컬 연기에 빠진 라면집딸 “경영? 배우 그만두곤 못 살아”

안진용 기자 | 2020-11-20 10:17

“적극성과 긍정성이 제가 가진 장점”이라는 뮤지컬 배우 겸 유튜버 함연지는 사진촬영이 시작되자 주저 없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적극성과 긍정성이 제가 가진 장점”이라는 뮤지컬 배우 겸 유튜버 함연지는 사진촬영이 시작되자 주저 없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김호웅 기자

■ 무대에 선 ‘오뚜기 창업주 손녀’ 함연지

재벌3세·배우·유튜버·예능인…
모두 날 수식하는 소중한 일부

배우가 되고 싶어 연기학 전공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팬 소통도
스스로 무언가 만드는 행복느껴

구독자 댓글 읽으며 질질짜기도
다들 재벌 이미지와 다르다고해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샌드박스네트워크 사무실에 만난 뮤지컬 배우 겸 유튜브 크리에이터 함연지(28)는 한마디로 마냥 발랄했다. 이날 오전 목동에서 라디오 생방송을 마친 후 부랴부랴 달려왔다지만 지친 기색도 없었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그는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여기 한번 앉아볼까요?”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려 달려들었다.

‘아차’ 싶었다. ‘오뚜기 창업주 손녀’이자 ‘재벌 3세’라는 그에게 달린 수식어 때문에 기자 역시 선입견을 갖고 그의 이미지를 지레짐작하고 있었던 탓이다. 자신을 “라면집 딸 함연지”라고 소개하고 “3분 카레집 딸도 좋고, 케첩집 딸도 좋다”는 ‘요즘 20대’와 조금도 다름없이 당차고 자기 표현력 강한 함연지와의 100분에 걸친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함연지가 소위 ‘배경’에 기대 활동하고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경영 수업’이 아니라 다른 노선을 택했다. 초등학생 때 그림을 그리는 사촌 언니의 모습에 반해 명문 예술 중학교인 예원학교에 진학했고, 외국어고를 거친 후 미국으로 유학 가 뉴욕대 티시예술학교에서 연기학을 전공했다.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터라 당연히 브로드웨이에 도전했지만 그 벽은 높았다. ‘뛰어넘기’보다는 ‘돌아가기’를 택한 그는 국내 무대로 돌아와 2014년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데뷔했다.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쉰다는 느낌이 몹시 행복하다는 그는 이제는 뮤지컬 배우를 넘어 유튜브 크리에이터, 예능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이 중 가장 소중한 수식어는 무엇일까?

“딱 하나를 고르긴 힘들어요. 그래도 ‘배우’라 불릴 때 가장 좋아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으니까요. 여러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유튜브는 제게 도전이면서 힐링도 돼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해주는 플랫폼이죠.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몇 번 출연했는데 베테랑 MC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있어요. 저는 모든 면에서 아직 배우는 단계죠.”

함연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연계가 시름에 잠기던 지난 4∼7월 뮤지컬 ‘차미’로 무대에 섰다. SNS에 매몰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교훈과 위로를 주는 코미디극이었다. 이후 그는 더 많은 이가 온라인을 통해 즐길 수 있는 웹 뮤지컬 ‘킬러파티’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유튜버로 활동하며 카메라 앞 1인극에 익숙해진 그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됐다.

“웹 드라마처럼 10분짜리 10개의 시리즈물이에요. 배우들이 유튜브 형식으로 각자 집에서 촬영한 후 편집해 이야기를 연결하는 추리물이죠. 배우들도 접촉 없이 찍기 때문에, 코로나19 시대에 걸맞은 ‘격리형 뮤지컬’이라 할 수 있어요.(웃음) 온라인 상영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분들께 좋은 선물이 될 거예요.”

요즘 함연지는 유튜버로 더 자주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개인채널 ‘햄연지’의 구독자수는 19일 기준, 36만 명이 넘는다. 지난해 4월 채널을 개설한 후 1년 만에 10만 명을 돌파하며 유튜브 본사로부터 ‘실버 버튼’을 받았다. 그가 몸담고 있는 소속사 샌드박스네트워크 역시 도티, 유병재 등 유명 유튜버들이 속한 회사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성장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던 그는 먼저 이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입사하기 위해 오디션까지 봤다.

“지난해 연말쯤 제가 무작정 찾아갔어요. 검은색 패딩에 모자 푹 눌러쓰고 갔죠. 혼자 가기 무서워서 엄마랑 갔어요, 하하. 유튜브 콘텐츠를 보다 전문적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노하우가 많은 회사를 원했죠. 2개의 콘텐츠를 만들어본 후 ‘합격’해서 계약할 수 있었어요.”

함연지가 느끼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삶은 꽤 만족스럽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제가 대단한 스타도 아니기 때문에 출연 섭외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먼저 보여주자’는 마음가짐이었어요. 사실 배우는 ‘쓰이는 존재’잖아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유튜버로서는 제가 직접 선택해서 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창의력을 발휘하고 주체성을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됐어요.”

함연지의 유튜브 채널은 ‘호기심으로 보러 왔다가, 재미있어서 계속 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튜버 함연지’가 아니라 ‘재벌 3세 함연지’의 삶을 엿보고 싶은 속내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5월, ‘어버이날 특집’으로 함연지가 끓인 라면을 먹는 함영준 오뚜기 회장이 출연한 콘텐츠의 조회수가 300만 뷰에 육박한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하지만 가만히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재벌가의 삶이 아니라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돈독한 부녀의 모습에 흐뭇해진다는 반응이다.

“전 구독자들의 반응을 꼭 살펴봐요. 처음부터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니까요. 댓글 하나하나를 읽으며 질질 짜기도 하죠.(웃음) 제가 직접 만든 콘텐츠를 통해 누군가가 즐겁고 행복해졌다고 하면 정말 뿌듯해요. 그렇기 때문에 소명 의식을 갖고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밝은 사람 같다’는 댓글을 읽을 때 가장 기뻐요.”

함연지는 자신의 영역에서 탄탄하게 바닥을 다지고 있다. 대중이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하지만 ‘오뚜기’와 ‘재벌 3세’라는 타이틀 역시 그와 떼어놓고 생각할 순 없다. 또한 일련의 드라마와 뉴스 속에서 노출된 재벌의 이미지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게 그려졌다는 것을 함연지 역시 알고 있다. 이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겸허한 수용’이다.

“제가 그런 수식어로 인해 득을 보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잖아요. 제 직업은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데, 어떤 형태로든 제게 관심을 가져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감사하고 있어요. 물론 부담되는 수식어지만 제 소중한 일부이기도 하니까요. 여러분을 직접 만나면서 자주 듣는 말이 ‘생각과 많이 다르시네요’예요. 아마도 드라마 속 이미지가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 역시 그런 드라마 속 캐릭터를 보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나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나 평범하고 털털하다고 느끼면서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효과도 있어요, 하하.”

뮤지컬 배우와 유튜버. 그리고 요리를 즐기는, 식품회사 CEO의 딸로서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무대가 있다. 함연지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미니 콘서트’다. 집 앞에 있는 한 카페를 적절한 장소로 내심 점찍어 두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제가 좀 더 성장한 후에는 온라인 영상을 통해 소통하던 구독자와 팬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요. 제게서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분들을 모셔서 제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작은 공연 무대를 마련하는 거죠. 한 동료 뮤지컬 배우의 데뷔 15주년 파티에 갔었는데, 팬들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어요.”

인터뷰 말미, 다시금 ‘재벌 3세’ 함연지의 삶에 대해 물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는 그가 ‘경영’이라는 짐을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 가볍지 않은 질문에, 함연지는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뭇 진지하게 답했다.

“물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배우의 길이 쉽지 않은 것처럼, 경영 역시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곁에서 아빠의 모습을 지켜봐도 ‘영혼을 갈아 넣으며 회사를 운영하신다’는 느낌을 받아요. 제가 ‘하고 싶다’고 무턱대고 도전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고, 연기와 경영을 병행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거죠. 정말 연기를 그만두고 다시 안 한다고 깊이 상상해봤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경영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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