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산후조리원’에는 다양한 캐릭터의 산모들이 등장한다. 박하선(왼쪽)은 빼어난 육아 실력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랑이 엄마’, 엄지원(가운데)은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지만 정작 출산 후 자신감을 잃어버린 ‘딱풀이 엄마’를 연기한다. ‘기생충’에서 송강호의 부인 역할로 낯익은 장혜진은 극 중 조리원의 엄격한 원장으로 나와 또 한 번 변신을 보여준다.

-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

다큐멘터리 같은 리얼리티와
코믹한 판타지 적절하게 조화

출산전 관장·통증·무통주사 등
민망한 과정까지 적나라한 묘사
엄지원·박하선 등 연기도 한몫

반인반모(半人半母). 엄마로서의 모성이냐, 인간으로서의 본능이냐. 출산 후 엄마의 고민과 고통을 표현한 말이다. tvN 월화극 ‘산후조리원’(극본 김지수·연출 박수원)은 조리원이라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공간을 배경으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고 있다. 제목만 접했을 때는 ‘조리원이 드라마 소재가 될 수 있나’ 의심이 들지만 지난 2일 첫 방송에서 황당한 아이디어로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10일 4회 방송까지 시청률 3∼4%대를 오르내리며 호응을 얻고 있다. 시청자들의 감상평을 한마디로 종합하면 “뭔가 과한데 공감이 가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리얼리티와 코믹 판타지를 적절히 버무려 이전엔 볼 수 없던 흥미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드라마에 가장 격하게 공감하는 시청자들은 역시 출산을 경험했거나 앞둔 여성들이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 ‘맘카페’에선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서울 성동구의 맘카페에선 “이런 드라마가 나와줘야 (출산이) 힘든지 알 것” “모유 수유 처음 할 때 아파서 신생아 이마 때린 게 기억난다” “과장이 있긴 하지만 공감이 간다”며 환영하고 있다.

첫 회, 출산 과정을 5단계로 나눠 ‘굴욕기’ ‘짐승기’ ‘무통 천국기’ ‘대환장 파티기’ ‘반드시 기쁨기’로 붙인 작명 센스부터 통통 튄다. ‘딱풀이 엄마’ 오현진 역의 엄지원은 망가지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잔뜩 일그러진 표정과 정신줄 놓은 대사와 몸짓으로 시청자들을 불러모았다. 출산 전 관장, 내진, 통증과 무통 주사 등 어느 정도 알고 있어도 결코 입 밖으로 내기 민망한 과정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웃음과 공감을 안긴다. 출산은 큰 기쁨인 동시에 그 이상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한 남성 시청자는 “처음에는 전혀 관심 없던 드라마인데 뭐지? 남자인 내가 왜 재미있는 거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출산 후 본격적인 조리원 생활을 보여준 2∼3회엔 더 기막힌 에피소드들이 펼쳐졌다. 맘 편히 쉴 수 있다고 믿었던 곳은 때론 불편한 공간으로 바뀐다. 조리원 내 규칙이 너무 엄격하고, 산모들 사이의 눈치 싸움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3회에선 모유 수유를 놓고 일대 ‘전쟁’이 벌어진다. 모유 수유를 최고 덕목으로 받드는 ‘사랑이 엄마’ 조은정(박하선)은 모유와 분유 사이에서 고민하는 ‘딱풀이 엄마’를 “모성도 없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신세대 엄마 이루다(최리)는 자신의 삶을 위해 모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분유를 택한다. 급기야 모유 수유 문제가 시비의 도화선이 돼 포장마차에선 남자들끼리 멱살을 잡고 싸우기까지 한다.

‘이런 드라마가 가능한가’라는 의심을 딛고 드라마가 의외의 호평을 얻은 건 섬세한 리얼리티와 속 시원한 코미디에 있다. 드라마는 금남의 공간인 조리원 내부를 낱낱이 공개한다. 그렇다고 시사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고발은 아니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실적 에피소드에 근거하되 패러디를 섞어 위트를 놓치지 않았다. 모유 수유 때문에 고민하던 ‘딱풀이 엄마’가 최종 결정을 앞두고 주마등처럼 미래를 상상해보는 장면은 배꼽을 잡게 하지만 그만큼 현실적인 고민을 보여준다. 또 출산 직후 기쁨의 ‘삼바춤’을 추면서도 슬픈 표정을 짓거나, 젖이 돌게 하려고 조리원에서 수시로 가슴 마사지를 하는 모습은 산모라면 흔히 공감하는 현실이다. 또 다른 맘카페 한 회원은 “출산 후 기침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소변을 보고, 마사지사가 방에 와서 시도 때도 없이 젖을 주무르고 할 때 내가 젖소인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면서 “재미를 위한 과장은 있지만 진짜 다 저러지 않냐”고 호응했다.

엄지원, 박하선, 윤박, 장혜진 등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엄지원은 만삭 연기를 위해 체중을 4㎏ 늘렸고, 박하선은 스카프, 손목보호대, 수면 양말 등 소품을 직접 준비했다.

실제 출산 경험을 살려 썼다는 김지수 작가는 “많은 이들이 겪었지만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도 곧 엄마 모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일, 성공, 사랑의 욕망이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드라마는 8부작으로 이달 말까지 방영된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